142. 대전 식장산 / 2022.8.28. / 산타모니카 산행이야기(26)
200대명산 142차 대전 식장산
이젠 완연한 가을날씨
오늘의 야생화 며느리밥풀 싱아 참취
산행기록
○ 일시 : 2022.8.28. 09:45 ~ 11:10
○ 장소 : 대전 식장산
○ 참석 : 1인
○ 높이 : 식장산 598m / 누적고도 59m
○ 거리 : 2.2km
○ 시간 : 1.4시간 / 이동시간 2시간
○ 배지 : 식장산, 식장산활공장
○ 코스 : 주차장 - 통신타워 - 식장산 - 조망 - 암릉 - 주차장
○ 특이사항 : 조망산행
<식장산>
대전 동남쪽, 대전시 동구 및 충청북도 옥천군에 걸쳐 있는 산으로 높이는 598m이다. 백제 시대에는 군량을 많이 저장하고 신라의 침공을 방어하던 요충지였다는 기록에서 식장산이라 불렀다는 유래와, 먹을 것이 쏟아지는 밥 그릇이 묻혀 있다 하여 식기산 또는 식장산이라 불렸다는 유래가 있다. 1934년 계곡을 막아 만든 댐이 식장산 세천유원지의 초입에 위치하며, 세천저수지를 따라 등산로가 만들어져 있다.
대전시는 1996년 식장산의 세천유원지 일대를 ‘자연생태보존림’으로 지정했다. 서쪽으로는 보문산 북쪽의 계족산이 있으며 북쪽으로는 백골산이 있다. 식장산의 사찰로는 1393년 조선 태조 2년에 무학대사가 창건했다고 알려진 작은 절인 구절사가 있으며, 산기슭에는 886년 도선국사가 창건했다는 고산사가 있다.
[네이버 지식백과] 식장산 [食藏山] (두산백과 두피디아, 두산백과)
식장산 정상표지석

식장산 지도

산정부 주차장까지 이동

식장산 문화공원 안내도

참취

누가 싱아를 먹었을까?
<싱아>
숭애·넓은잎싱아라고도 한다. 산기슭에서 흔히 자란다. 높이 약 1m이다. 줄기는 굵고 곧게 선다. 가지가 많이 갈라지며 털이 없다. 잎은 어긋나고 바소꼴이며 길이 12∼15cm이다. 양끝이 좁고 가장자리에 물결 모양의 톱니가 있다. 잎집처럼 생긴 턱잎은 막질(膜質:얇은 종이처럼 반투명한 것)이고 털과 맥이 있으며 곧 갈라진다.
꽃은 6∼8월에 흰색으로 피고 윗부분의 잎겨드랑이와 가지 끝에 커다란 원추꽃차례로 달린다. 포는 작고 각각 2∼3개의 꽃이 달리며 작은꽃자루보다 길다. 화피갈래조각은 길이 약 3mm이다. 꽃받침은 5개이고 수술은 8개이다. 열매는 세모진 수과(瘦果)로서 길이 5mm 정도이고 화피 길이의 2배 정도이며 10월에 익는다. 번식은 종자나 포기나누기로 한다. 어린 대는 신맛이 있으며 날로 먹는다. 한국·중국에 분포한다.
[네이버 지식백과] 싱아 [Alpine knotweed] (두산백과 두피디아, 두산백과)

자전거로 산행길을 오릅니다

2018년 대전시내가 내려보이는곳에 식장루를 지었음

식장루

문모양의 기념비

식장산 문화공원(해돋이전망대)(펌)

대전시내의 모습 한밭느낌이 납니다

대청호의 모습

정상부에는 어김없이 군시설 통신시설이

헬리포트. 대전야경명소로 자리매김

자연스럽 산행길

갈림길

며느리밥풀이 가는 여름을 서러워함

식장산. 백제 시대에는 군량을 많이 저장하고 신라의 침공을 방어하던 요충지였다는 기록에서 식장산이라 불렀다고

해맞이 전망대에 정상표지석이 있음
명칭의 유래는
첫째, 백제 때 신라로 통하는 군사적 요충지로 성을 쌓고 신라를 방어하기 위해 군량미를 저장하였다 하여 식장산이라 불렀다는 설,
둘째, 옛날 이 산에서 스님이 기도를 하는데 어느 날 벽에서 쌀이 한 톨씩 나오자 쌀을 더 나오게 하려고 작대기로 그 구멍을 후볐더니 그마저 나오지 않았다고 하여 이름 붙여졌다는 설,
셋째, 음식을 조금 담아 놓고 잠시 기다리면 음식이 몇 배로 불어나게 하는 식기가 묻혀 있어 '식기산' 또는 '식장산'이라 했다는 전설 등이 전해진다. 『산경표』에는 '식장산(食莊山)'으로 기록되어 있다.
[네이버 지식백과] 식장산 [食藏山, Sikjangsan] (한국지명유래집 충청편 지명, 2010. 2.)

환상적인 산그리메

조금은 엉성한 난간

휴전선 철조망보다 더 오래된듯한 철조망

식장산 정상부

군시설을 주위로 한바퀴 돌아간다

식장산 구절사
대한불교조계종 제5교구 본사인 법주사의 말사이다. 1393년(조선 태조 2) 무학(無學) 자초(自超)가 창건하였다. 영축봉(靈竺峰) 동쪽과 서쪽 봉우리 밑에 거북 모양의 바위가 있어서 창건 당시에는 영구암(靈龜庵)이라고 하였다. 창건설화에 따르면, 자초가 산세를 보니 성현이 나올 만한 곳이라 절을 지었다 한다. 이후의 연혁은 전하는 바가 거의 없고 단지 이 절에서 정성을 다해 기도하면 아들 없는 사람은 아들을 얻고, 수명이 짧은 사람은 장수하게 된다고 알려져 많은 이들이 찾았다고 전한다. 《신증동국여지승람》이나 《여지도서》는 물론 일제강점기 때 반포된 사찰령에도 절 이름이 나오지 않아 절의 연혁을 알 수 없다. 1933년 청주에 사는 한병석(韓柄奭) 등의 신도들이 중건한 이후 부분적으로 불사를 진행하다가 1975년부터 성진이 대대적인 불사를 일으켜 오늘에 이른다.
[네이버 지식백과] 구절사 [龜截寺] (두산백과 두피디아, 두산백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