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의 소금강이라는 운악산
운악산 정상표지석 글씨체가 운악산에 맞춤형인듯
○ 일시 : 2018.12.24 07:37 ~ 11:04
○ 장소 : 가평 운악산
○ 참석 : 1인
○ 높이 : 운악산 938 / 누적고도 749m
○ 거리 : 7.0km
○ 시간 : 3.5시간 / 이동시간 4시간
○ 코스 : 하판리 - 눈썹바위 - 미륵바위 - 운악산 - 코끼리바위 - 절고개 - 현등사 - 민영환바위 - 하판리
○ 배지 : 운악산(동봉)
○ 특이사항 : 암릉산행
한남정맥의 여러 맥 가운데 한북정맥에 속한 산으로, 북쪽으로 청계산·강씨봉·국망봉 등과 이어져 있으며 북동쪽에는 화악산(華岳山:1,468m)·명지산(明智山:1,267m) 등의 명산이 있고 동쪽으로는 매봉·명지산, 서쪽으로는 관모봉이 보인다. 가평군 현리로부터 약 6km 지점에 있으며, 동쪽 계곡의 물은 조종천을 이루고 서쪽과 북쪽 계곡의 물은 농경지를 형성하면서 포천천으로 흘러든다. 경기의 금강(金剛)으로 불릴 만큼 산세와 기암괴석, 계곡이 잘 어우러져 절경을 이룬다. 주봉인 망경대를 중심으로 봉우리마다 깎아지른 듯한 절벽들이 우뚝우뚝 치솟아 있고 주변에는 뾰족봉·편편봉·완만봉 등의 봉우리들이 겹겹이 둘러싸고 있다. 서쪽 계곡의 거대한 암벽에서 맑은 물이 떨어지는 무지개폭포(홍폭)는 궁예가 이곳으로 피신하여 흐르는 물에 상처를 씻었다는 전설이 전한다.
산이 크지는 않지만 경사가 급하고 산세가 험하다. 봄에는 4월 중순에 자목련, 5월경에 진달래와 산목련이 계곡과 바위마다 흐드러지게 피고 여름에는 고사리·취나물이 많으며, 가을에는 상봉에서 붉게 물든 단풍이 장관을 이룬다. 겨울철에는 서쪽 계곡의 폭포가 얼어붙어 빙벽등반의 훈련장으로 이용되기도 한다. 운악팔경(雲岳八景)의 제1경은 등산로 중턱에 있는 백년폭포로서, 백년 동안 변함없이 흐른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제2경은 6·25전쟁 당시 오랑캐들이 은거하였다는 다락터 오랑캐소로, 소의 물이 복더위 중에도 얼음같이 차다고 한다. 제3경은 운악산 중턱에서 오른쪽 계곡 쪽에 있는 사람 눈썹모양의 눈썹바위이고, 제4경은 현등사 오른쪽 계곡에 있는 코끼리바위이며, 제5경은 망경대이다. 제6경은 무우폭포(舞雩瀑布)에 있는 민영환 암각서로, 구한말 민영환 선생이 이곳을 찾아 기울어가는 국운을 탄식하였다고 하는데 1906년 나세환 외 12명의 뜻에 의거하여 각서한 것이며 ‘민영환바위’라고도 부른다. 제7경 큰골내치기 암벽은 큰골계곡에 있는 삼각형태의 80m 암반절벽이다. 제8경은 하판리 노채계곡에 있는 노채애기소로, 규모가 작아 애기소라 한다.
가평군 조종면에서 운악산을 오르면 무우폭포가 있고, 남동쪽의 산 중턱에는 고찰 현등사(懸燈寺)가 자리잡고 있다. 이 사찰은 신라 법흥왕 때 인도의 승려 마라하미를 위하여 창건하였다고 하며, 고려 희종 때 보조국사 지눌(知訥)이 재건하였다. 경내에는 하판리3층석탑, 현등사3층석탑, 7층다보탑, 보광전, 부도 등과 극락전의 아미타불상 후불탱화, 관세음보살상, 범종 등이 있다. 하판리 동구 언덕에는 조병세·민영환·최익현의 신위를 모신 3층단이 있다. 운악산은 화악산·관악산(冠岳山:629m)·감악산(紺岳山)·송악산(松嶽山:489m)과 함께 경기 5악에 속하는데, 그 중에서도 산수가 가장 수려한 곳으로는 운악산의 망경대가 꼽힌다. ‘운악산(雲岳山)’이란 이름은 망경대를 중심으로 높이 솟구친 암봉들이 구름을 뚫을 듯하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며, 현등사의 이름을 빌려 현등산이라고도 한다.
[네이버 지식백과] 운악산 [雲岳山] (두산백과 두피디아, 두산백과)
운악산 정상(가평방면)
운악산 서봉(포천방면)
산행지도
산행 개념도
하판리에서 산행을 시작해 봅니다
가평방면 종합안내도
현등사 일주문
첫번째로 올라야할 눈썹바위 방면
출발시작 한컷
선녀를 기다리던 총각이 돌이되었다는 눈썹바위
<눈썹바위>
옛날 경기도 가평군 하면 하판리[현 조종면 운악리] 운악산 입구에 하늘나라 선녀들이 선녀탕에 내려와 목욕을 하며 너닐고 있었다. 이 광경을 한 떠꺼머리 총각이 넋을 잃고 보고 있었다. 그러나 선녀들은 이를 눈치채지 못하고 목욕을 즐기다가 모두 바위 위에서 잠이 들어버렸다. 이 틈을 타서 총각은 산에서 살금살금 내려와 선녀들이 벗어놓은 옷가지 중에서 치마를 하나 훔쳐 산으로 다시 올라와 숨어 있었다.
잠에서 깨어난 선녀들이 각자의 옷을 찾아 입었는데, 한 선녀가 자신의 치마를 찾지 못하고 어찌할바를 모르고 있었다. 선녀들은 안절부절하면서 함께 옷을 찾아보았지만 발견하지 못하였다. 선녀들이 하늘나라로 올라갈 시간이 되어 어쩔 수 없이 치마를 잃어버린 선녀만 남겨둔 채 하늘로 올라가 버렸다. 떠꺼머리 총각은 날이 어두어지자 산에서 내려와 “어디서 오신 분이신데 날이 저물도록 산 속에 계십니까? 더 어두워지기 전에 저의 집으로 같이 가시지요.”라고 시치미를 떼고 말하였다. 선녀는 치마가 없어 갈 수 없다고 말하자 떠꺼머리 총각은 자신이 감추었던 치마를 선녀에게 주었다.
선녀는 황급히 치마를 입더니, “제가 내일 이곳으로 다시 오겠습니다. 그때 다시 만나 댁으로 함께 가시지요. 그때까지만 기다려 주십시요.”라고 말하고는 하늘나라로 가버렸다.
이튿날 날이 밝자 총각은 선녀탕이 내려다보이는 바위로 갔다. 선녀를 기다렸지만 아무리 기다려도 선녀는 내려오질 않았다. 한편 그 선녀는 옥황상제에게 큰 꾸지람을 듣고 다시는 인간세상에 내려가지 말라는 명령을 받았다.
이러한 하늘나라의 일을 알리가 없는 떠꺼머리 총각은 하루 이틀이 지나고 몇 달이 다 가도록 선녀를 기다렸다. 선녀를 기다리고 기다리다가 떠꺼머리 총각은 바위로 변하고 말았다. 그때 총각이 굳어서 된 바위가 지금의 눈썹바위이다. 안개가 자욱한 날이면 지금도 애타게 선녀를 기다리는 떠꺼머리 총각의 모습처럼 눈썹바위는 눈을 감았다 떴다 하는 모습으로 보인다.
네이버 지식백과] 「선녀를 기다리다가 바위가 된 총각」 (한국향토문화전자대전)
설명판
눈썹바위 바로 아래서
우회하여 올라갑니다.
버섯바위 인가요? 왠지 영험해 보입니다
명지산 연인산이 보이고
진행방면 좌측능선
경기 금강산임을 입증해주는듯 병풍바위 인도 승려(마라하미)를 내친바위
병풍바위 설명판
선바위들이 보입니다.
미륵바위
미륵바위라는데 어떻게 미륵바위인지?
이런식의 오름길이네요
소나무옆 만경대가
만경대... 국망봉 화악산 명지산 연인산이 조망됩니다
운악산 정상
경기 5악중의 하나인 운악산
셀카로...
운악산 동봉이랍니다.
운악산 정상 바위
남근석
설명판
갈림길
코끼리바위
코끼리바위
계곡이 얼어 빙벽
폭포도 얼고
하산길
부도탑
함허당득통탑
설명판
1500년 역사의 현등사
<현등사>
신라 법흥왕(法興王) 때에 인도의 승려 마라하미(摩羅訶彌)를 위하여 창건하였다고 한다. 신라 말기에 도선(道詵)이 중창하고 다시 고려 희종(熙宗) 때 보조국사(普照國師) 지눌(知訥)이 재건하여 현등사라 이름하였고, 그후 1411년(조선 태종 11)과 1823년(순조 23)에 다시 중수하였다고 한다.
현재 경내에는 정면 3칸, 측면 2칸의 극락전(極樂殿), 정면 5칸, 측면 3칸의 보광전(普光殿) 및 요사(寮舍)와 3층석탑·지진탑(地鎭塔)·부도탑(浮屠塔) 등이 있으며, 도요토미 히데요시[豊臣秀吉]의 금병풍(金屛風)이 있었는데, 6·25전쟁 중에 분실되었다. 보조국사가 폐허화한 불우(佛宇)를 발견했을 때 불우는 비록 황폐했지만 석등(石燈)의 불빛만은 여전히 밝게 비치고 있었으므로, '현등(懸燈)'이라 이름붙였다고 한다.
[네이버 지식백과] 현등사 [懸燈寺] (두산백과 두피디아, 두산백과)
차, 커피, 컵라면 파는곳도
가을날의 하산길
민영환 바위...구한말 궁무부대신이었던 민영환선생이 기울어져가는 나라를 걱정하던 바위
경기도 가평군 조종면 운악리에 있는 현등사(懸燈寺)로 가는 길가의 바위에 ‘민영환’이라고 새겨진 암각 글자로 1906년 내시부지사(內侍府知事) 나세환(羅世煥) 등 12명이 새긴 것이다. 세로로 새겨진 세 글자의 길이는 민영환의 키와 같다고 전한다. 민영환은 조종면 현리에 내려와 있을 때 이곳에 들러 기울어가는 조선의 국운을 탄식하며 통곡하였다고 전하며, 인근에 민영환과 최익현(崔益鉉)·조병세(趙秉世) 등 구한말의 우국지사 3명의 충절을 기리는 삼충단(三忠壇)이 있다.
[네이버 지식백과] 가평 민영환 암각 [加平閔泳煥岩刻] (두산백과 두피디아, 두산백과)
민영환바위(펌)
민영환 암각서 설명판
현등사 내리막길
무우폭포(舞雲瀑布) (펌)
무운폭포(舞雲瀑布)는 ‘무우폭포(舞雩瀑布)’라 부르기도 한다. 무운폭포는 안개처럼 부옇게 내리는 비 혹은 기우제를 지내는 제단을 뜻하는 ‘무우(舞雩)’에서 유래한 이름이라는 설과 자연을 벗 삼는 즐거움이라는 뜻의 ‘무우귀영(舞雩歸詠)’이라는 고사성어에서 유래되었다는 설이 전해진다.
무운폭포는 운악산 중턱에 위치한 폭포로 높이가 약 20m 정도이다. 무운폭포는 45도 정도로 기울어진 암벽을 타고 완만하게 흐르는 폭포라서 바람을 일으키며 시원하게 떨어지는 일반적인 폭포와는 다르게 물소리도 크지 않고 물보라가 일지도 않는다.
운악산 일대의 무운폭포와 백년폭포를 이루는 암반은 약 1억 5,000년에서 2억 년 전 사이에 마그마가 깊은 곳에서 천천히 식으며 형성된 중생대 쥐라기 화강암으로 이루어져 있다.
무운폭포는 운악산 매표소에서 백년폭포를 지나 운악계곡을 따라 올라가면 현등사(懸燈寺)가 나오기 전에 있는 다리 옆에 있다. 무운폭포의 바위 중간에는 을사조약(乙巳條約) 체결을 개탄하며 반대하다 자결한 민영환(閔泳煥)의 이름이 새겨져 있는데, 민영환이 생전에 바위에 누워 나라의 운명을 걱정하던 곳이라 하여 ‘민영환바위’라 부르기도 한다.
[네이버 지식백과] 무운폭포 [舞雲瀑布] (한국향토문화전자대전)
무우폭포 설명판
계속되는 하산길
삼충단(조병세 민영환 최익현)
1998년 6월 17일 경기도 가평군 향토유적으로 지정되었다. 1905년 일제가 을사늑약을 체결하여 국권을 침탈하자 가평에 은거하고 있던 조병세(趙秉世)는 79세의 고령에 서울로 올라와 을사늑약의 무효와 을사오적 처단을 주장하며 항거하다가 뜻을 이루지 못하자 자결하였다. 최익현(崔益鉉)은 74세의 고령으로 의병을 모집하여 일본군과 싸우다 체포되었으나, 쓰시마섬으로 유배된 뒤에도 단식으로 투쟁하다가 감옥에서 숨졌다. 민영환(閔泳煥)도 을사늑약 폐기와 을사오적 처단을 내용으로 하는 상소를 올렸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자 자결하였다. 가평 삼충단은 1910년 이들 세 충신의 충절을을 기리기 위하여 설치되었으며, 1989년 지금의 위치로 옮겨 복원한 뒤 매년 11월 25일에 추모제를 올리고 있다. 정면 중앙에 '순국열사 조병세선생 추모비'가, 왼쪽에 '순국열사 최익현선생 추모비'가, 오른쪽에 '순국열사 민영환선생 추모비'가 있다.
[네이버 지식백과] 가평 삼충단 [加平 三忠壇] (두산백과 두피디아, 두산백과)
하판리 하산
2023년 7월 19일준공된 운악산 출렁다리
연장 210m, 폭 1.5m
3년여만의 공사기간 끝에 완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