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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3. 양평 용문산 / 2019. 12.07. / 산타모니카 산행이야기(46)

100대명산 산행기(카스)/73. 양평 용문산

by 산위에서 부는 바람 2025. 1. 31. 08: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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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대명산 73차 양평 용문산

천년은행나무를 보다

갑작스런 겨울산행

​산행기록

○ 일시 : 2019.12.7 8:55 ~ 16:50

○ 장소 : 양평 용문산

○ 참석 : 1인

○ 높이 : 용문산 1,157m / 누적고도 1,234m

○ 거리 : 9.7km

○ 시간 : 7.9시간(휴식시간 1.5시간) / 이동시간 4시간

○ 코스 : 휴양림 - 용문사 - 은행나무 - 마당바위 - 용문산 - 눈꽃산행 - 절고개갈림길 - 용문사

○ 배지 : 용문산

○ 특이사항 : 갑작스런 겨울날씨 산행

 

 

용문산(龍門山)

높이 1,157m. 양평(楊平) 북동쪽 8km, 서울 동쪽 42km 지점에 위치한다. 광주(廣州)산맥계에 속하나 독립된 한 산괴로서 산체(山體)가 웅대하여 동서 8km, 남북 5km에 걸치고, 용문산을 주봉으로 하여 동북동 5.5km의 도일봉(道一峰:864m), 동쪽 4.5km의 중원산(中元山:800m), 남서 3.5km의 백운봉(白雲峰:940m) 등 지봉(支峰)이 용립(聳立)하여 연봉을 이루고 있다.

정상은 평정(平頂)을 이루고 능선은 대지(臺地)가 발달하였으며, 특히 중원산과의 중간에는 용계(龍溪)·조계(鳥溪)의 대협곡이 있고 그 사이에 낀 대지는 수 100m의 기암절벽 위에 있어 금강산을 방불케 한다. 북쪽은 완경사, 남쪽은 급경사를 이루고, 첩첩이 쌓인 암괴들이 나타나며 깊은 계곡과 폭포도 볼 수 있고 용문산 북서 일대는 고도 700∼1,100m의 약 4㎢의 고위평탄면이 나타난다. 남쪽 산록 계곡에는 용문사(龍門寺)·상원사(上院寺)·사나사(舍那寺) 등 고찰이 있고 용문사 경내에 있는 은행나무는 천연기념물 제30호로 지정되고 나무가 차지하는 면적이 260㎡나 된다. 또 이곳에는 보물 제531호 정지국사 부도(正智國師浮屠) 및 비(碑) 2기가 있다.

[네이버 지식백과] 용문산 [龍門山] (두산백과 두피디아, 두산백과)

 

용문산 정상

용문사 산행지도

 

​주차장 도착

 

날잡아 떠나온 원정산행 2차 용문산 주차장에서

첩첩산중이란 이런것인가

용문산

이름의 유래로는 본디 미지산(彌智山)이라는 이름으로 불리던 산 이었으나, 조선 태조 이성계가 등극하면서 용문산으로 바꿔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본래 이름인 미지(彌智)는 미리(彌里)의 옛 형태고, ‘미리’는 '용’의 옛말인 ‘미르’ 의 방언 이다. 즉 미지산이나 용문산이나 뜻에서 별 차이가 없다

 

일주문

등산안내도 유명산으로 넘어가려 했으나 시간상 포기

 

근사하게 출발

 

용문사 가는길 소나무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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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년은행나무를 드디어 뵙습니다 수령은 1100~1500년이라 합니다. 높이는 42m

<용문사 은행나무>

1962년 12월 7일에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었다. 높이 42m, 가슴높이의 줄기둘레 14m로 수령은 1,100년으로 추정된다. 가지는 동서로 28.1m, 남북으로 28.4m 정도 퍼져 있다.

나무의 나이를 추정하는 근거는 용문사의 창건연대와 관련하여 산출하고 있다. 용문사는 649년(진덕여왕 3)에 원효대사가 세웠다고 한다. 따라서 은행나무는 절을 세운 다음 중국을 왕래하던 스님이 가져다가 심은 것으로 보고 있다.

신라의 마지막 임금인 경순왕의 아들 마의태자(麻衣太子)가 나라를 잃은 설움을 안고 금강산으로 가다가 심었다는 설과, 의상대사가 짚고 다니던 지팡이를 꽂고 갔는데 그것이 자랐다는 설도 전해지고 있다.

이 나무는 은행나무 중에서는 물론이고 우리나라에서 자라는 나무 중에서도 가장 큰 나무로서 조선 세종 때 당상직첩(堂上職牒) 벼슬이 내려졌다 하며, 마을에서는 굉장히 신령시하여 여러 가지 전설이 전해지고 있다.

옛날 이 나무를 베고자 톱을 대었을 때 톱자리에서 피가 나오고 맑던 하늘이 흐려지면서 천둥이 쳤기 때문에 중지하였다는 이야기와 정미의병이 일어났을 때 일본군이 절을 불살라버렸으나 나무만은 타지 않았다는 이야기와 나라에 큰 이변이 생길 때마다 큰 소리를 낸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고종이 승하했을 때 커다란 가지 한 개가 부러졌고, 8·15광복, 6·25전쟁, 4·19, 5·16 때에도 이상한 소리가 났다고 한다.

[네이버 지식백과] 양평 용문사 은행나무 [楊平 龍門寺 銀杏─]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동양최대 은행나무

 

천연기념물 제30호

 

 

용문사

 

은행잎 소원지도 한가득

용문사. 신라 신덕왕 2년(913년) 대경대사가 창건하였다 한다

<용문사(龍門寺)>

대한불교조계종 제25교구본사인 봉선사(奉先寺)에 속해 있다. 913년(신덕왕 2) 대경 대사가 창건하였으며, 고려 우왕 때 지천대사가 개풍 경천사의 대장경을 옮겨 봉안하였다. 1395년(태조 4) 조안화상이 중창하였으며, 1447년(세종 29) 수양대군이 어머니인 소헌왕후(昭憲王后) 심씨(沈氏)의 원찰로 삼으면서 보전을 다시 지었다. 1457년(세조 3) 왕명으로 중수하는 등 중 ·개수를 거듭하였다. 조선 초기에는 절집이 304칸이나 들어서고 300명이 넘는 승려들이 모일 만큼 번성했던 것으로 보인다.

대한제국 때 전국에서 의병활동이 활발하게 전개될 당시 용문산과 용문사는 양평일대 의병들의 근거지가 되었다. 당시 권득수 의병장이 용문사에 병기와 식량을 비축해두고 항일활동을 펼치며 일제에게 타격을 입혔다. 반격에 나선 일본군 보병 25연대 9중대와 용문사 일대에서 치열한 공방전을 벌였는데 1907년(융희 1) 8월 24일 일본군이 용문사에 불을 질러 사찰의 대부분 전각들이 소실되었다.

[네이버 지식백과] 용문사 [龍門寺] (두산백과 두피디아, 두산백과)

 

천년이 넘는 세월이...

천년의 세월이 녹아 있네요

 

수많은 바램들이​

 

용문사계곡

색깔을 갈색으로 바꾸지

 

계속되는 바위계곡들​

 

 

 

마당바위

 

 

마당바위 설명판

집마당처럼 평평한 바위로 계곡산행객들의 쉼터로 활용된다는 마당바위

 

낙석주의​

 

어느새 눈쌓인 길을 걷고 있네요

 

그림이 그려지기 시작합니다

 

정상 110m

 

카스친구분들 사진으로만 보던 용문산 정상에 서봅니다

 

철조망에도 상고대가 붙고

 

때아닌 겨울산행

 

그저 앞선분들의 동작을 발자욱을 따라갑니다​

 

 

 

그 사이 내린듯

 

시계 50m 

 

 

바위가 예술

 

미끄럼 주의

 

소임을 다한 나무는 하늘나라에 있어요

 

가을에서 겨울로

 

뿌리가 인고의 세월을 말해주네요

 

하산길1

하산길2

 

계곡도 건너고

 

다시보는 천년 은행나무

 

 

출렁다리도 건너고

 

점점 외계인 수준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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