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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5. 공주 무성산 / 2022.12.3. / 산타모니카 산행이야기(47)

200대명산 산행기/155. 공주 무성산

by 산위에서 부는 바람 2025. 1. 20. 08: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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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대명산 155차 공주 무성산

첫눈이 살짝내린 그런 가을 산행길

야생화는 없고

산행기록

○ 일시 : 2022.12.3. 11:36 ~ 15:05

○ 장소 : 공주 무성산

○ 참석 : 1인

○ 높이 : 무성산 614m / 누적고도 502m

○ 거리 : 9.0km

○ 시간 : 3.5시간 / 이동시간 2.5시간

○ 배지 : 무성산

○ 코스 : 한천저수지 - 좌측산길 - 임도 - 한천약수터 - 홍길동동굴 - 무성산(인증) - 조망대 -

마을하산

○ 특이사항 : 첫눈이 살짝 내린 가을 산행

 

 

 

<무성산(茂盛山)>

충청남도 공주시의 우성면, 정안면 및 사곡면에 걸쳐 있는 산이다(고도:614m). 지명은 문헌에 따라 서로 다르게 나타난다. 『여지도서』, 『신증여지승람』 및 『동국여지지』에는 '무성산(茂城山)'으로, 『조선지형도』에는 '무성산(武盛山)'으로, 『대동여지도』와 『대동지지』에는 '무성산(武城山)'으로 표기되어 있다.

무성산에는 홍길동과 관련된 두 가지 전설이 전해진다. "고려 시대에 쌓은 것으로 추정되는 산성에서 조선 세조 때 홍길동이 웅거하면서 탐관오리들과 토호들을 못살게 했다." 또 다른 내용으로는, "옛날 이 산속에 홍길동이 그의 모친과 누님을 모시고 살았는데, 하루는 남매간에 내기를 하여, 길동은 쇠신을 신고서 송아지를 이끌고 한양까지 갔다 오기로 하고, 누님은 산봉우리에 성을 쌓기로 하고, 누구든지 빠른 사람이 이기는데, 만일 경쟁에서 지면 죽이기로 했다. 내기의 결과, 누나가 성을 다 쌓고 돌 하나만 올려놓으면 되는 순간에 길동이는 이미 한양에서 돌아와서 누님은 죽임을 당하고 말았다."고 한다.

[출처] 무성산 [茂盛山, Museongsan] (한국지명유래집 충청편 지명, 2010. 2.)

 

 

무성산 정상표지석

무성산 산행지도

 

무성산 산행지도

 

한천리 진입하면서 보는 무성산능선(무성지맥)

 

 

한천저수지위를 들머리로

 

남도는 가뭄인데 여긴 계꼭물이 풍부한듯

 

오름길에 한컷

 

흔들바위용으로 만들어진듯

 

임도를 만나고 계단 오름길이

 

임도의 갈림길에서

 

 

무성산 등산안내도. 주변이 임도로 연결되어 있네요

<무성산 친환경 임도>

공주시는 1990년부터 27억원을 들여 추진한 무성산 임도조성사업이 2013년 완료돼 무성산 둘레를 잇는 31.7㎞의 친환경 순환임도가 조성됐다.

무성산은 해발 614m로 사곡면과 정안면, 우성면 사이에 위치하고 있으며 옛 성곽 흔적, 10여 개의 석탑, 홍길동의 활동 무대로 전해지는 홍길동산성 터와 홍길동굴이 남아 있는 곳으로 산악자전거 등 레포츠를 즐기는 사람들이 많이 찾아오는 곳이다.

 

 

한천약수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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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수터의 비밀

 

아직도 흐르는 약수물

 

무성산 오름길

 

왠지 아파보이는 나무 

 

홍길동굴. 홍길동이 살았다능. 입구가 막혀져 있다고

<홍길동 전설>

아주 먼 옛날 이 산속에 홍길동과 누나 그리고 어머니가 살았다. 홍길동 오뉘는 힘이 장사였는데 자주 다투었다. 보다 못한 어머니가 오뉘에게 힘겨루기를 시켜 이기는 쪽만 살아남기로 하였다. 길동은 쇠 신을 신은 채 송아지를 끌고 한양을 갔다 오는 것이고, 누나는 무성산에 성을 쌓는 내기였다.

내기가 시작되자 쇠신을 신은 길동이 송아지를 몰고 한양으로 내달렸고, 누나는 밤낮을 가리지 않고 돌을 날라 성을 쌓았다. 어머니는 하루가 다르게 성이 쌓이는 것을 보면서 길동의 소식이 없는 것을 안타깝게 생각하였다. 성을 다 쌓으면 아들인 길동을 죽어야 하기 때문이다.

여러 날이 지나서 성이 거의 다 완성되어갔다. 어머니는 초조한 나머지 한 꾀를 생각해냈다. 그리고는 죽을 쑤어가지고 딸에게 가서 “얘야, 죽을 쑤어왔는데 먹고 하렴.” 하고 말했다. 딸이 “돌 하나만 걸쳐놓으면 성문이 다 되는데요.”라고 하자, 어머니는 “죽 먹고 기운내서 하거라.” 하며 어머니가 다그쳤다. 누나는 마침 배도 고프고 하여 뜨거운 죽을 입으로 불어 식혀가면서 퍼먹었다.

죽 한 그릇을 비우고 일어서려는데, 어느 사이에 골목 저쪽에서 쿵쿵 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다 닳은 쇠신을 신고 송아지를 끌며 길동이 도착한 것이다. 어머니와 딸이 동시에 ‘아!’ 하며 소리를 질렀다. 결국 오누이의 힘겨루기는 동생인 길동이 승리하였다. 약속대로 누나는 나무에 목을 매고 숨졌다. 지금도 무성산의 돌성은 성문이 완성되지 않은 채 그대로 놓여 있다고 한다.

[출처] 「홍길동성 전설」 [洪吉童城傳說] (한국향토문화전자대전)

 

홍길동굴이 막혀 있다고

 

정상부 오름길 

 

첫눈처럼 너에게 가겠다.

 

전망대가 보이고 

 

걱정봉. 홍길동 모친이 길떠난 홍길동을 걱정해 자주 바라본 곳이라고.

 

걱정봉 전망대 

 

무성지맥이라 종주자들 시그널이...

 

능선을 따라

 

홍길동성 

 

홍길동성이라고도 합니다.

<무성산성>

무성산성은 협축식으로 축조되었다. 산성의 대부분은 완전히 붕괴된 상태지만 능선 정상부를 지나는 서벽의 경우 비교적 원형이 잘 남아 있다. 이곳에는 면석도 남아 있어 축성법을 살펴볼 수 있다. 하지만 곳곳에 남아 있는 치성도 대부분 붕괴되어 치성인지조차 불분명한 경우도 있다. 성문은 완전히 파괴되어 흔적만 남아 있으며, 건물 터 또한 평탄하게 터만 남아 있다. 관련 유물은 거의 찾아보기 어렵다.

공주 지역에 분포하는 산성과는 달리 해발 614m에 자리 잡고 있어 입지부터 차이가 난다. 축성법도 협축식으로 편축식을 한 다른 산성과 비교된다. 치성 또한 방형으로 뚜렷하게 다섯 개나 남기고 있다. 이러한 차이점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축성 시기가 밝혀져야 분명히 해명할 수 있을 것이다. 홍길동이 축성하였다는 전설도 무성산성을 이해할 수 있는 하나의 좋은 근거 자료가 될 것이다.

[출처] 무성산성 [武城山城] (한국향토문화전자대전)

 

무성산 정상 가는 길

 

정상인증 

 

오랜만에 200대산 진행합니다.

 

우리의 시그널도 붙히고

 

산정부의 이 무덤들은 뭔가요

 

홍길동성

 

홍길동성 안내판

 

중식시간. 라면이 제법 맛이 들었습니다

 

소나무숲 능선길을 따라

 

무성산 전망대

 

전망대에서 본 모습(무성면)

 

능선 갈림길

 

산불 이후로 새로 자라는 소나무와 기존 소나무가 묘한 조화를...

 

드디어 임도를 만나고

 

공주교대애서 약수터를 정비

 

공주시 정안면은 밤나무가 정말 많네요

 

밤나무밭을 따라 마을로...

 

홍길동의 후예인가요? 깊은 산골짜기에 마을이 있네요

 

되돌아본 모습

 

<무성산 산제당>

공주시 우성면 한천리 상연천마을 북쪽의 무성산 산중에 위치한 제당. 목조 기와집인 이 제당에서 부전동 열두 마을이 합심하여 산신제를 지낸다.

무성산산제당은 무성산 상봉의 동남쪽에 위치한 상영천마을의 산 중턱에 자리 잡고 있다. 1984년 이전에는 초가 형태의 6.6㎡ 남짓한 건물이었다. 이러한 외형상의 초라함을 개선하기 위해 부전대동계 임원들이 꾸준히 공주시에 자금을 요청하였고, 그 결과 1984년 산제당 중수자금을 확보하게 되었다.

같은 해에 확보된 자금을 사용하여 6.6㎡ 남짓한 규모의 목조 건물을 지었다. 통나무로 기둥과 상량을 들이고 벽면은 시멘트 블록으로 쌓았다. 그리고 시멘트로 마감한 다음 페인트로 채색하였다. 지붕은 기와를 얹어 건물 전체가 전통적인 한옥 양식을 따르고 있다.

[출처] 공주무성산산제당 [公州武盛山山祭堂] (한국민속신앙사전: 마을신앙 편, 2009. 11. 12.)

 


<무성산 산제당>

1977(丁巳)년의 『부전대동계 수지부(浮田大洞稧 收支簿)』에 산제당 대지 대금으로 2만 1,000원(金貳萬仟원, 山祭堂 垈地代)을 지출하였다고 기록하고 있다.

 

사유지에 산제당이 위치함으로써 산주가 산제당을 홀대하는 일도 발생하였다고 한다.

<이 곳에서도 이런 사연이 전한다>

“본래 이 산은 박씨의 산이었다. 박씨는 벌목업자에게 산의 나무를 팔아넘겼다. 벌목꾼들은 이 산의 나무를 베면서 산제당 주변의 노거수만은 베지 않고 그대로 두었다. 그러자 박씨가 찾아와서 ‘산제당 주변의 나무도 베어가라’고 하였다. ‘내가 이미 당신들에게 판 것인데 왜 안 베어 가느냐?’고 재촉하였다. 벌목꾼들이 ‘이 나무들은 안 베겠다’고 하자 산주가 직접 톱을 들고 나서서 나무를 베었다. 나무를 벤 산주는 그 자리에서 쓰러졌다. 그는 바로 병원으로 실려 갔다. 그 이후는 그는 말도 못하고 누워서 지냈다. 마을 사람들이 문병을 가서 ‘산제당에 가서 빌어라. 나을 수도 있을지 모르니 가서 잘못했다고 빌어라'라고 하였다. 그는 마을 사람들의 말을 듣고 부축을 받으며 산제당에 올라갔다. 그러고는 자신의 잘못을 빌었다. 그 이후 그는 일어나서 조금씩 걷게 되었다. 그리고 부전대동계 임원을 찾아와 산제당이 위치한 장소 주변을 대동계에 매매하였다."

[출처] 공주무성산산제당 [公州武盛山山祭堂] (한국민속신앙사전: 마을신앙 편, 2009. 11.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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