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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8. 진도 첨찰산 / 2015.3.7. / 산타모니카 산행이야기(86)

200대명산 산행기/118. 진도 첨찰산

by 산위에서 부는 바람 2025. 9. 28. 08: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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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남300산  127,128차 진도 금골산, 첨찰산

이른 봄날의 조망산행

 

 

산행기록

○ 일시 : 2015.3.7 11:40 ~ 14:25

○ 장소 : 진도 첨찰산

○ 참석 : 1인

○ 높이 : 첨찰산 485 / 누적고도 454m

○ 거리 : 6.7km

○ 시간 : 2.8시간(휴식시간 0.4시간) / 이동시간 2시간

○ 배지 : 첨찰산

○ 코스 : 운림산방주차장 - 쌍계사 - 상록수림 - 첨찰산- 강우레이더시설 - 무목재 - 운림산방 - 주차장

○ 특이사항 : 조망산행

 

 

첨찰산(尖察山)

전라남도 진도군의 동편에 위치한 산이다(고도:485m). 진도군에서 가장 높은 산지를 이루고 있어, 진도의 진산이라고 불릴 정도이다. 도선국사가 창건했다는 쌍계사와 천연기념물인 상록수림대가 있고, 쌍계사 바로 옆에는 소치 허유의 운림산방과 기념관이 함께 자리잡고 있다. 산에 오르는 길목에는 진도아리랑 비가 세워져 있으며, 산 정상에는 진도 기상대가 있다. 산 서쪽 아래 의신면 사천리는 다시래기로 유명한 민속 마을이며, 사천이 유입되는 사천저수지는 진도에서 가장 큰 수원지이다. 가장 아름다운 산악미와 다양한 환경을 제공하고 있어 계곡을 중심으로 많은 마을들이 입지하고 있다.

『대동지지』(진도)에 "동으로 20리에 있다"라 하고, 『신증동국여지승람』에는 "점찰산(占察山)은 진도군의 동쪽 20리에 있다"는 기록과 "점찰산(占察山) 봉수가 남쪽으로 여귀산에 응하고"라는 기사내용으로 보아 봉수로의 중요한 역할을 한 것을 알 수 있다. 『여지도』와 『동역도』에도 점찰산(占察山)으로 나오지만, 『호남지도』와 『1872년지방지도』(진도)에는 첨찰산(尖察山)으로 표기되어 있다. 『신증동국여지승람』을 비롯한 여러 지리지에 의하면 점찰산봉수는 동쪽의 해남 관두산 봉수, 남쪽으로는 여귀산 봉수에서 연락을 받아 북쪽의 해남 일성산 봉수에 전달하였다.

[네이버 지식백과] 첨찰산 [尖察山, Cheomchalsan] (한국지명유래집 전라 · 제주편 지명, 2010. 12.)

 

기존 첨찰산 정상표지석

 

새로 설치된 첨찰산 정상표지석

 

첨찰산 산행개념도

 

지나는 길 금골산을 먼저 들러 봅니다

<금골산>

금골산은 해발 193m에 불과하지만, 산 전체가 거대한 바위로 우뚝 솟은 기이한 산이다. 정면에서 바라보면 마치 조각가가 일일이 예술작품을 조각해 놓은 것처럼 보인다. 수십 길 절벽에는 층층바위를 이룬 곳 구멍이 숭숭 뚫린 곳이 있는가 하면 보는 방향에 따라 사람 또는 짐승으로 연상케 하는 기암괴석들이 산 전체를 수놓고 있다.
1498년 무오사화 때 관직을 빼앗기고 진도에 유배되어 온 이주(李胄)는 금골산의 아름다움에 감탄해 「금골산록」이라는 글에서 금골산에 대해 기록했는데, 서거정의 『동문선』에 실려 오늘에 전해오고 있다.

금골산이란 이름의 유래는 없으나 쇠 금(金)자에 뼈 골(骨)자를 쓰고 있는 것으로 보아, 산 전체가 철분함량이 높은 화산암과 누런 금빛의 응회암으로 이루어졌고, 뼈처럼 골격미가 드러나 있는 산지 모습에서 유래된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네이버 지식백과] 금골산 [金骨山] (한국향토문화전자대전)

 

금골산 관광안내도

 

산자락에는 산의 규모에 비하면 해묵은 천년고찰 해원사(海院寺) 또는 해언사로 불리는 절이 있었음을 증명해 주고 있다. 높이 4.5m인 이 석탑은 석질은 별로 단단하지 않지만 보물로 지정된 이유는 고려 후기 작품이면서도 정읍 은선리에 있는 삼층석탑과 거의 같은 백제탑의 양식이 가미되어 있기 때문이다.

 

5층석탑

이 산 아래 위치한 초등학교 교정에는 금골산 5층석탑(보물 제529호)이 있다. 이 탑은 부여 정림사지 5층석탑(국보 제9호)을 모방한 백제 양식을 채택하고 있어 학술적 가치가 큰 것으로 판단돼 보물로 지정되었다. 금골산 5층탑은 해언사탑이라고도 하는데, 옛날 이 탑이 서있는 곳에 해언사라는 절이 있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그 외 금골산 동쪽에 사리암이라는 암자가 있다.

 

 

「금골산 탑 전설」은 두 가지 이야기가 전하는데, 첫 번째 이야기는 탑 안에 이 세상의 일을 모두 알 수 있는 책이 들어 있었으나 누군가가 훔쳐 갔다는 내용이다. 또 하나는 일제 강점기 때 탑이 있는 땅 소유주가 일본 사람한테 땅을 팔았는데, 이후 일본 사람들이 그 땅에 있는 탑을 옮기려고 하자 상골산이 이틀이나 울었다. 이에 마을사람들이 나서서 탑을 팔지 못하게 막았다는 내용이다.

 

높이 4.5m. 석탑은 단층 받침돌 위에 5층의 몸돌과 지붕돌을 올리고 반구형(半球形) 돌로 상륜부(相輪部)를 조성한 모습이다. 석탑이 있는 곳에는 해월사(海月寺)라는 절이 있었다고 전하며, 지금의 위치가 원래의 자리로 추정된다.

바닥돌은 땅 속에 묻혀 있어 구조를 알 수 없다. 단층 받침돌은 4장의 널돌로 면석을 짜고, 각 면마다 모서리 기둥과 1개의 가운데 기둥을 새겼다. 받침돌의 덮개돌에는밑면의 쇠시리인 부연(副椽)과 윗면의 굄이 모두 생략된 채 아무런 새김을 하지 않았다.

이 석탑은 백제계 석탑을 계승한 것으로, 1층 몸돌이 지나치게 길고 각 층의 지붕돌이 길고 넓어서 조형미를 갖추지 못한 듯 보인다. 곧 백제계 석탑으로는 가장 남쪽에 건립된 석탑이라는 점에서 주목된다. 조성 시기는 돌을 다듬은 수법이나 각 부분의 양식으로 보아 고려 말기로 추정된다.

[네이버 지식백과] 진도 금골산 오층석탑 [珍島 金骨山 五層石塔]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진도의 금수강산’이라고 불릴 정도로 아름다운 자태를 자랑한다. 금골산은 뒤쪽에서 보면 평범한 산이다. 그러나 정면과 옆면에서 바라보면, 보는 위치에 따라 여러 가지 모양이 나타난다. 아주 큰 사람의 얼굴 모습, 커다란 짐승을 연상시키는 모양 등 다양하다. 금골산 정면에는 크고 작은 석굴(타포니)들을 비롯해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은 구멍들이, 그것도 각각 모양과 크기가 다르게 뚫어져 있다. 특히 산 정상 부근과 중간 부근에 파여 있는 커다란 석굴 3개는 산의 신비감을 더해준다. 그 가운데 산 정상 부근 석굴에는 좌우 3.5m 크기의 금골산마애여래좌상(전라남도 문화유산자료)이 있다. 이 좌상은 1470년경 새겨진 것으로 보인다.

[네이버 지식백과] 금골산 [金骨山] (한국향토문화전자대전)



 

냉이

밭이나 공터의 양지바른 곳에 흔히 자라는 두해살이풀. 이른 봄 뿌리에서 여러 개의 이 돌려 나와 옆으로 퍼져 방석 모양을 이룬다. 줄기는 늦은 봄 뿌리에서 나와 곧게 자라며 이른 여름까지 여러 개의 횐 이 달린다. 의 직경은 2.5 cm 정도이며 4장의 꽃받침, 4장의 꽃잎, 6개의 수술, 그리고 1개의 암술이 있다. 열매는 편평한 삼각형이다. 이른 봄 대표적인 들나물의 하나로 재배하기도 한다. 유사 식물로 냉이, 황새냉이, 논냉이, 미나리냉이, 싸리냉이, 말냉이 등이 있다.

[네이버 지식백과] 냉이 [shepherd's purse] (식물학백과)

 

마애여래좌상 설명판

 

갈림길

 

<해언사>

해언사는 금골산 자락에 있는 사찰이다. 최초 창건된 시기에 대해서는 정확하게 전해지지 않는다. 
한동안 금골사로 불려지다가 몇년전 해언사로 이름이 바뀌었다.
해언사가 자리잡은 금골산 중턱에는 마애불이 있다.(남도여행길잡이)

 

지금의 해언사(태고종 소속)는 한동안 금골사(金骨寺)로 불리어 온 절이었는데 주지인 지수(智洙) 스님이 옛날 이름을 되찾는다는 의미에서 4년 전 개칭했다.해언사는 옛날 도선국사가 3천 8백 군데의 사찰을 정할 때 그중 한 곳으로 정한 곳이라는 얘기가 전해지고 있다.

 

해언사(멍뭉이가 하도 짖어서 돌아갔다)

 

사스레피나무

 

산자고가 막 피어나기 시작함

암릉길

 

간척지 평야들의 시원스런 모습

 

금골마을

 

해언사 위 수십길 절벽 위 자연석굴 속에 있는 마애불에는 다음과 같은 전설도 전해진다. 이굴속에는 늙은 스님과 상좌 한 사람이 살았는데 바위구멍에서 매일 두 사람이 먹을 수 있는 쌀만 나왔고 식객이 더 늘더라도 절대 욕심을 버리고 그 나온 쌀만으로 먹고 살아야 된다는 불문율이 있었다. 그런데 어느날 의외로 많은 손님들이 찾아와 두 사람분 쌀만 가지고는 음식을 함께 먹을 수 없게 됐다. 그래서 늙은 중이 화를 내며 ‘이놈의 구멍은 인정사정도 없더란 말이냐’하면서 더 많은 쌀이 나오기를 기대하며 쌀구멍을 쑤셨다. 그러나 쌀은 더 나오지 않고 홧김에 쑤신 구멍만 망가지고 그 이후로는 구멍에서 한 톨의 쌀도 나오지 않았다고 한다. 그 후 놀라움과 후회에 잠긴 노승은 상좌와 함께 더 이상 먹을 것이 없는 이곳을 떠나고 말았다는 얘기가 그것이다.(남도여행길잡이)

 

 

마애여래좌상

기암절벽으로 이루어진 금골산(金骨山)[해발 193m]에는 수도처로 사용된 세 개의 굴(상굴·서굴·동굴)이 있는데, 이중 동굴(東窟) 안에 금골산마애여래좌상이 새겨져 있다. 굴은 입구가 너른 편이며 서너 명이 기거할 수 있는 크기이다. 마애불은 굴의 한가운데 남동 방향으로 새겨져 있으며, 진도의 비옥한 토지와 한려수도의 장쾌한 경관을 바라다보는 위치에 놓여 있다. 마애불이 있는 금골산 초입에는 고려시대에 지어진 해원사(海院寺)가 있었다고 전하는데, 현재 금성초등학교 안에 있는 오층석탑은 해원사의 유물로 전한다. 인근에는 해언사(海堰寺)가 있다. 금골산마애여래좌상는 1984년 2월 29일 전라남도 문화재자료 제110호로 지정되었다가 2021년 11월 19일 문화재청고시 제2021-141호 「문화재 지정[등록]번호 삭제 및 문화재명 표기 방식 변경 고시」에 따라 문화재 지정번호가 삭제되었다. 2024년 5월 17일 국가유산청의 「국가유산기본법」 시행에 따라 전라남도 문화재자료에서 전라남도 문화유산자료로 변경되었다.

제작경위로 『속동문선』에 실려 있는 이주(李胄)의 「금골산록」에 의하면, 조선 전기 1469년부터 약 3년 동안 진도군수를 역임한 유호지(柳好池)의 발원에 의해 조성되었다고 한다.

이 굴속에 양각되어 있는 마애여래좌상 가슴 아래 움푹 패인 사각형 구멍이 바로 전설속의 쌀구멍이다. 지수 스님에 의하면 6.25 때에는 순경 3형제가 인민군에게 잡혀와 총살을 당했는데 세 사람 모두 총알이 빗나가 살아 남았을 정도로 이 산은 영험함이 있는 산이라고 한다.

[네이버 지식백과] 금골산마애여래좌상 [金骨山磨崖如來坐像] (한국향토문화전자대전)

 

오름길 안전난간

 

산자고

산자고는 우리나라 중부 이남의 산과 들에 자라는 다년생 초본이다. 생육환경은 양지쪽의 토양이 비옥한 곳에서 자란다. 키는 약 20㎝이고, 잎은 회록색으로 길이는 15~30㎝, 폭은 0.4~0.5㎝이고, 2장이 뿌리에서 나오며 끝이 날카롭다. 꽃은 흰색으로 지름은 1㎝ 내외이고, 넓은 종 모양으로 줄기 끝에 한 송이 달린다. 꽃잎 뒷부분은 자주색 선이 선명하고 개화하기 전에는 붉은색 계통이 많이 들어가 있다. 열매는 7~8월경에 삼각형으로 달린다. 일반적으로 다른 꽃들은 곧추서서 자라지만 대체적으로 산자고는 비스듬히 옆으로 누워 있는 모습이다. 어린잎은 식용, 뿌리는 약용으로 쓰인다.

[네이버 지식백과] 산자고 (야생화도감(봄), 2010. 4. 10.)

 

금골산 정상에서

 

해남방면 바다

 

해언사의 모습

 

또 산자고

 

바위옆으로 돌아갑니다

 

큰바위얼굴 모습같기도 하고

 

작은 용이 기어가는 모습

 

동백꽃

 

봄까치꽃(큰개불알꽃)

군락 형성: 봄철에 무리지어 피어 장관을 이루며, 한 송이가 지면 또 한 송이가 피는 등 봄 내내 볼 수 있습니다. 

봄까치꽃은 봄을 알리는 대표적인 야생화로, 주로 큰개불알풀을 가리키며, 꽃말은 ‘기쁜 소식’입니다.

이 꽃은 이른 봄에 군락을 이루어 피며, 작고 앙증맞은 하늘색 꽃이 특징입니다.

이름의 유래: 열매의 모양이 개의 불알을 닮아 ‘개불알풀’이라 불렸으나, 꽃의 아름다움과 어울리지 않아 ‘봄까치꽃’으로 개명되었습니다. 

학명 및 분류: Veronica persica, 현삼과 두해살이풀, 귀화식물로 길가나 빈터의 습한 곳에서 잘 자랍니다. 

꽃과 잎: 하늘색 꽃이 잎겨드랑이에 1개씩 달리며, 꽃잎은 작고 별 모양입니다. 잎은 줄기 밑에서 마주나고, 윗부분에서는 어긋납니다. 

꽃말: ‘기쁜 소식’으로, 봄의 시작을 알리는 상징적 의미를 가집니다.
봄까치꽃은 작은 꽃이지만 군락을 이루면 매우 아름답고, 봄의 전령사로 불립니다.

일부 지역에서는 ‘코딱지나물’, ‘코딱지풀’ 등 다양한 지방명이 존재합니다. 

 

개쑥갓

 

나 어릴땐 철부지로 자랐지만

 

운림산방 주차장

 

첨찰산 안내문

 

쌍계사 일주문

 

첨찰산쌍계사

 

상록수림이 유명

 

<쌍계사>

진도에서 가장 오래된 사찰인 쌍계사는 신라 말의 승려인 도선국사가 창건했다. 사찰 양옆으로 계곡이 흘러 붙여진 이름이다. 쌍계사 방향으로 들머리를 잡는다면, 첨찰산으로 향하는 첫 관문인 쌍계사 일주문을 지나야 한다. 기둥 2개가 지붕을 받치고 있는 일주문은 진리의 세계로 향하기 전 마음을 하나로 모아 바르게 한다는 상징적인 의미를 지닌다. 산으로 향하는 마음이 이와 다르지 않으니, 첨찰산을 오르는 심신이 보다 진중해진다. 일주문에서 얼마 걷지 않아 갈림길이 나온다. 첨찰산으로 바로 향하는 등산로와 쌍계사 안으로 들어설 수 있는 천왕문 길이다. 산행을 바로 시작해도 되고, 쌍계사에 잠시 들렀다가 옆길로 돌아 산으로 올라도 된다. 쌍계사는 여러 문화유산을 보존하고 있다. 경내 중심에 자리한 대웅전과 그 안에 모신 목조삼존불좌상, 지장보살을 모신 시왕전 안의 목조지장보살상 등이다.

[네이버 지식백과] 참, 진도스러운 첨찰산 (대한민국구석구석 여행이야기, 한국관광공사)

 

상록수림(제주도 분위기 살짝)

1962년 12월 3일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었다. 면적 2,028,988㎡. 이 상록수림은 진도읍에서 약 8㎞ 떨어져 있는 쌍계사(雙溪寺) 옆을 흐르고 있는 개천의 양쪽을 덮고 있다. 지난날 완전히 파괴된 흔적이 있으나 점차 회복되고 있다.

상록활엽수종으로서는 생달나무·센달나무·후박나무·참식나무·붉가시나무·종가시나무·참가시나무·동백나무·감탕나무·차나무·광나무·모밀잣밤나무·자금우 등과 더불어 멀꿀·마삭줄·모람 등의 덩굴식물이 자라고 있다. 또, 낙엽활엽수종으로 느릅나무·자귀나무·실거리나무·쥐똥나무·조록싸리·삼색싸리·갈매나무·졸참나무·굴피나무·여덕나무 등도 자라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상록수림이 나고 있는 곳은 제주도를 비롯한 남쪽 도서군과 전라남도·경상남도의 해안이 대부분이다. 그런데 이곳 식생은 오래전부터 인간의 생활재나 연료재로 이용되어 많이 파괴되었다. 따라서 상록수림을 자연상태로 보존하는 것은 학술연구상 중요한 가치를 지니고 있다.

이 의신면의 상록수림은 구성 수종이 비교적 풍부하기 때문에 잘 보호하여 시간이 흐르면 다시 원래의 상태로 회복될 것으로 여겨진다.

[네이버 지식백과] 진도 쌍계사 상록수림 [珍島 雙溪寺 常綠樹林]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삼선암약수터

 

갈림길

 

넓적바위 공터

 

넓습니다

 

낯선이의 등장에 분주하던 이름모를 산새가 이젠 숨어 있다

 

능선 갈림길

 

강우레이더 시설이 보인다

 

첨찰산 산행안내도

 

진도 기상대

진도에서 가장 높은 곳

축구공 모양의 커다란 원형 레이더를 가지고 있는 기상대로 2001년에 세워져 호남 지방의 기상을 관측하는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는 곳이다. 실제로 레이더를 보고 궁금해서 찾아오는 경우가 종종 있다고 하니 그것이 표지판 역할을 하는 셈이다. 기상대가 자리하고 있는 산이 첨찰산인데 진도에서 가장 높은 산으로 운림산방과 쌍계사를 품고 있는 산이기도 한 곳이다.

[네이버 지식백과] 진도기상대 (죽기 전에 꼭 가봐야 할 국내 여행 1001, 2010. 1. 15.)



 

첨찰산 정상표지석 후면

 

여귀산, 조도방면

 

정상인증

 

첨찰산 봉수

 

봉수대

첨살산봉수는 전라남도 진도군 의신면 사천리 첨찰산 정상에 있는 조선의 봉수대다. 2012년 2월 29일 진도군의 향토문화유산(유형유산) 제15호로 지정되었다.

첨찰산 봉수는 진도군 의신면 첨찰산 정상에 위치하며, 사천리 쌍계사에서 등산로를 통해 올라갈 수 있으며, 진도군 기상대로 가는 도로를 따라서 봉수지 앞까지 갈 수 있다. 첨찰산은 현 봉대가 위치한 산정을 중심으로 동남쪽의 해발 460m 고지와 남쪽 420m 고지로 연결되어 있다. 첨찰산 정상과 기상대가 자리한 동남봉 사이에는 헬기장이 축조되어 있는 관계로 땅이 다듬어져 있으나, 봉대가 위치한 곳은 암산이다.

현재 봉수대는 자연 암반 위에 원형의 연대가 비교적 양호하게 보존되어 있다. 30×20 cm 크기의 자연석으로 난층 쌓기 방식에 의해 구축한 연대는 남북 직경 9m, 동서직경 8.5m, 둘레 30.3m 규모이다. 가장 양호한 서벽의 경우 현 높이 2m 정도이나 그 밖의 다른 부분은 도괴되어 있다. 또한 최근에 쌓은 것으로 보이는 석탑이 연대 내에 자리하고 있어 봉수지에 대한 관리 보호가 시급하다.(위키백과)

 

정상부

 

산자고

 

 

기상대가 나오고

 

양지꽃

양지꽃은 전국의 산과 들에 자라는 다년생 초본이다. 생육환경은 토질에 관계없이 햇빛이 잘 들어 오는 곳에서 자란다. 키는 30~50㎝이고, 잎은 길이가 1.5~5㎝, 폭은 1~3㎝로 여러 개가 나와 사방으로 퍼지며, 양끝이 좁고 양면에 털이 있으며 타원형이다. 꽃은 황색으로 직경은 1.5~2㎝로 꽃받침의 길이보다 1.5~2배 정도 길다. 열매는 6~7월경에 길이가 약 2㎜ 정도로 달리고 털이 없으며 난형이다. 관상용으로 쓰이며, 어린순은 식용, 뿌리를 포함한 전초는 약용으로 쓰인다.

[네이버 지식백과] 양지꽃 (야생화도감(봄), 2010. 4. 10.)

 

봉수대

 

진도기상대

축구공 모양의 커다란 원형 레이더를 가지고 있는 기상대로 2001년에 세워져 호남 지방의 기상을 관측하는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는 곳이다. 실제로 레이더를 보고 궁금해서 찾아오는 경우가 종종 있다고 하니 그것이 표지판 역할을 하는 셈이다. 기상대가 자리하고 있는 산이 첨찰산인데 진도에서 가장 높은 산으로 운림산방과 쌍계사를 품고 있는 산이기도 한 곳이다.

길을 따라 산을 넘다 보면 기상대로 난 표지판이 있는데 날씨 맑은 날이면 올라가보도록 하자. 전망대에 오르면 진도를 사방으로 둘러볼 수 있으며, 날씨가 맑으면 멀리 제주도까지 보인다고 한다. 워낙 외진 곳이라 찾는 사람들이 많지 않아 이곳에 근무하는 직원들에게 인사를 건네면 반갑게 맞이해주며, 부탁을 하면 잠깐이나마 기상대 내부를 견학할 수 있게 허락해준다.

[네이버 지식백과] 진도기상대 (죽기 전에 꼭 가봐야 할 국내 여행 1001, 2010. 1. 15.)

 

하산길에 보이는 강우레이더시설

 

바다조망

 

평야지대의 농촌마을

 

수 많은 길중에 그 중에 임도를 만나

 

안내표지판

 

임도 접속

 

두목재

 

양지바른곳에 양지꽃

 

진돗개

전라남도 진도군 일대에서 길러오고 있는 우리나라 특산의 개 품종.

1962년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었다. 가축으로 기르게 된 유래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은 설이 있다.

삼국시대에 남송(南宋)의 무역선이 진도 근해에서 조난을 당하였을 때 유입되었다는 설과, 고려시대 삼별초의 난 때 몽고군의 군견이 진도에 남아 시조가 되었다는 설, 그리고 조선 초기 진도군 지산면에 설치되었던 군마목장을 지키기 위하여 몽고에서 수입되었다는 설 등이 있다.

명확한 역사기록이 남아 있지 않아 확실하게 유래를 단정할 수 없으나, 석기시대의 후예에서 발달된 개 중에서 동남아시아계의 중형종(中型種)에 속하는 품종의 하나로, 육지와 격리된 채 비교적 순수한 혈통을 그대로 보존해 온 것으로 보인다.

임진왜란 때에는 진도의 개 모두가 일제히 한 방향을 향하여 짖으며 심상치 않은 태도를 보였는데, 다음날 수많은 왜군의 배들이 그 방향에서 나타났다는 이야기가 전하여지는 등, 진돗개에 관한 많은 전설이 전하여져 오고 있어 신견(神犬)이라고도 하였다.

성격이 대담하고 후각과 청각이 아주 예민하여 사냥에 적합하며 쥐사냥도 잘한다. 또한, 충직하고 영리하며 귀소본능이 뛰어나 애완용이나 집지키기에도 적합한 개이다.

 

아리랑 진돗개 시범사육장

 

진도 아리랑비

진도아리랑비는 진도아리랑 가사가 새겨진 비로서 진도군 의신면 사천리 첨철산 남쪽 기슭에 세워져 있다. 건립 연월일은 1995년 8월 15일이다. 진도문화원에서 건립을 주관했고, 진도아리랑보존회에서 후원하였다. 재질은 석재 화강암이다. 글씨는 장전 하남호가 썼으며, 본비와 부비로 이루어져 있다. 본비의 글은 학고 김정호가 썼으며, 부비의 글은 향전 박병훈이 썼다. 박병훈이 비 모형설계를 했으며, 진도석재사(대표: 박인용)가 공사용역을 맡아서 세웠다.

 

[금석문] 본비 한민족의 상징인 민요처럼 불리는 아리랑은 곳곳마다 그 특색을 담고 있다. 그 중에서도 진도아리랑은 예향다운 특징을 고루 갖춰 누구나 쉽게 부를 수 있으면서도 부르는 이는 즐겁고 듣는 이는 흥겹기가 으뜸이다. 진도아리랑은 모든 이의 원망도 슬픔도 신명나는 가락과 해학적인 노랫말로 풀어주는 타령 중의 꽃이다. 이 고장 선인들은 비록 살아가는 삶이 고되고 한스러울 적에도 스스럼없이 속마음을 노랫말로 토해내 목마름을 달랠 줄 아는 슬기를 보였다. 우리 군민들은 이 멋과 정서의 뿌리를 널리 자랑하고 오래오래 이어갈 증표로 삼고자 뜻을 모아 여기에 이 비를 세운다.

[출처] 한국학중앙연구원 - 향토문화전자대전

진도아리랑은 예부터 아리랑타령이라 하여 구전으로 불리어져 다른 민요와 같이 그 시원은 알 수 없으나 조선조 말인 1900년대 초부터 진도아리랑이라 이름하였다 한다. 가락은 흥겨운 멋을 간직한 속에 애절한 한이 깃들어 있고 비애를 사랑으로 승화시킨 노래를 후렴중의 음-음음 소리는 슬픔과 기쁨이 한데 엉켜 있는 것과도 같다. 이 민요의 창법은 판소리와 같이 느낌이 구성진 굵은 목을 눌러내는 듯한 성격을 띠고 있으며 특히 종지음의 치켜올리는 생동감은 다른 아리랑과 쉽게 구별이 된다. 가사는 임을 그리는 애끓는 심사와 원망을 해학적으로 엮어진 내용이 많으며 그때마다 창자가 지닌 정서를 전래의 가락에 맞추어 즉흥적으로 불려지는 극히 서민적인 민요이다. 장단은 세마디이고 선율은 시나위형으로 중모리 장단에 불려지며 특히 진도아리랑은 가사와 함께 가락에 독특한 흥취가 있어 남도민요의 진수로 일컬어진다.

남산제비꽃

 

봄까치꽃

 

꽃잔디

 

운림산방

전통남화의 성지 운림산방
첨찰산 첩첩산중에 아침저녁으로 피어오르는 안개가 구름숲을 이룬다는 운림산방. 산방 마루에 걸터 앉아 운림지를 내려다본다. 슬며시 내리는 보슬비에 초가지붕이 젖고 이윽고 뜨락에는 산빛 물이 든다. 때 마침 피오르던 안개는 나갈 길이 없는지 운림지 가운데 배롱나무 가지에 걸려 있고 어느새 몽환의 세계에 갇힌다.
운림산방은 조선시대 남화의 대가였던 소치 허련 선생(1808~1893)이 말년에 거처하며 여생을 보 냈던 화실이다. 이곳에는 연못과 정원이 어우러져 조화를 이루며 초가집과 소치기념관, 진도역사관 등이 있다. 영화 “스캔들 조선남여상열지사”의 배경이 되기도 하여 더욱 유명하다.
이곳에서 소치(小痴)는 미산(米山) 허형을 낳았고 미산이 이곳에서 그림을 그렸으며 의재 허백련이 미산에게 처음으로 그림을 익힌 곳이기도 하다. 이와같이 유서깊은 운림산방은 소치(小痴) - 미산(米山) - 남농(南農) - 임전(林田) 등 5대에 걸쳐 전통 남화를 이어준 한국 남화의 본거지이기도 하다.
운림산방, 쌍계사, 상록수림이 한데 어우러진 이곳을 많은 관광객이 찾고 있으며, 운림산방에서 약 150m를 오르면 1995년 8월 15일에 세워진 진도아리랑비가 아담하게 서있다.
운림산방 앞에 있는 연못은 한면이 35m 가량되며, 그 중심에는 자연석으로 쌓아 만든 둥근 섬이 있고 여기에는 소치가 심었다는 백일홍 한 그루가 있다.(진도군)

 

이제 곳 떠날 채비를 꾸린다

 

운림산방

조선시대 남화의 대가인 소치(小癡) 허유(許維·1809- 1893) 선생이 말년에 거처하며 그림을 그리던 화실로서 일명 ‘운림각’이라고도 한다. 추사 김정희에게 그림을 배운 인물로, 늦깎이지만 천부적인 재질과 강한 의지로 시(詩), 서(書), 화(畵)에 능했다. 그는 1856년 추사가 세상을 떠나자 고향으로 돌아와 첨찰산 쌍계사 남쪽에 집을 짓고 화실을 만들어 여생을 보냈다. 이후 이곳은 소치(小痴)~미산(米山)~ 남농(南農)~임전(林田) 4대에 걸쳐 이어온 한국 남화의 본거지가 되었다. 운림산방은 연못과 어우러진 정원의 조화가 아름답다. 또한 이곳에 소치의 사당과 소치·미산·남농의 3대 작품을 한꺼번에 볼 수 있는 소치기념관, 진도의 고유한 문화적 배경을 한눈에 살필 수 있는 진도역사관 등이 조성되어 있다.

진도대교 통과직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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