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심 시원스런 조망을 기대했건만 운무에 조망은 완전 꽝이다
오늘의 야생화 참조팝나무 꿀풀
○ 일시 : 2017.6.11 10:00 ~ 14:00
○ 장소 : 화순 모후산
○ 참석 : 1인
○ 높이 : 황석산 918m / 누적고도 650m추정
○ 거리 : 8.5km
○ 시간 : 4.0시간 / 이동시간 1시간
○ 배지 : 모후산
○ 코스 : 유마리 - 유마사 - 용문재 - 모후산 - 중봉 - 집게봉 - 유마사 - 주차장
○ 특이사항 : 운무 산행
<모후산 母后山 >
고려 공민왕 때 홍건적의 개경 침공으로 피신을 해야 했던 공민왕은 왕의 처가 쪽인 화순 동복 오씨들과 어머니 를 모시고 피신처를 찾던 중 화순동복사람인 "김도"의 안내로 지금의 순천시 송광면 삼청리 모후산 자락 왕대마을 쪽에 안착하게 된다. 아들인 공민왕은 경상도 안동으로 가게 되고, 어머니와 처가쪽 사람들이 이곳 송광면 삼청리 왕대마을에 머무르면서, 모후산에서 자생하는 산삼을 먹으며 기력을 회복하게 된다. 그후 홍건적의 난이 어느 정도 진압된 이후 어머니를 모시러 온 공민왕이 이곳 순천 송광면 삼청리 왕대마을에 도착하여 기이하고 우람한 산세를 보고 곁에 있던 김도에게 "이산이 무슨 산이냐?"라고 물으니, 김도는 "예, 라복산이라 하옵니다."라고 대답하였다. 그러고 나서 다시 왕이 말하기를 "과연 덕여모후로다."라고 말하였다.
순천 역사 중 송광면 삼청리에 전해 내려오는 오랜 전설로 전해지고 있으며 왕이 머무른 장소라 하여 마을 이름도 '왕대' 라 칭하였고, 왕족이 피신한 임시수도라 하여 그 아랫마을 이름은 '유경'이라 부르게 되었다. 지금도 이곳 송광면 왕대, 유경 마을에는 공민왕의 이야기와 함께 산넘어 주암면 대광리 용문마을 에 존재하던 '대광사'란 큰절이 존재했었고 대광사 관련 불교유적들이 송광면 삼청리, 후곡리 주암면 대광리 주변으로 남아있으며 대표적인 대광사의 유적에는 대한민국 명승 25호로 지정된 '초연정원림'이 있고 후곡리 모후산 중턱에는 유마사 운성암절터가 현재에도 남아있다.
과거에는 후곡리 절터, 삼청리 절터로 불렸던 곳이다. 이렇듯 모후산은 화순군과 함께 순천시 주암, 송광면 의 진산으로 신증동국여지승람에 대광사 이야기와 함께 기록되어있는 명산임에도 불구하고 1991년 광주권 상수도 공급 을 위해 이곳을 중심으로 주암댐 담수가 시작되고, 수몰되는 위기 를 맞이하게 된다. 상수원보호구역과 함께 자연환경보전구역 으로 묶여있는 탓에 순천 쪽 명성보단 화순군의 산으로 알려진 산이다.(나무위키)

5년만에 다시 오른 모후산 정상 기억이 가물가물

모후산 개념도

유마리에 주차장을 잘 조성해 놓았다.

유마리 마을

여기서 부터 유마사 경내

계속 걸어가면

모후산 유마산 일주문

어디에든 작은 바램들이 조심스레 모여살고 있다

유마사 대한불교 조계종 송광사의 말사로 627년(백제 무왕) 중국에서 온 유마운과 그의 딸 보안이 창건했다 한다

아기자기한 모후산 등산로. 고려인삼의 최초 재배지로 알려져 있다


해련부도 / 고려전기 승려 해련스님의 사리를 모신 석조 불탑(보물 제1126호)
<유마사 해련탑>
절에서 전하는 이야기에 의하면, 석재가 무너져 흩어져 있던 것을 6·25전쟁 뒤에 현재의 자리로 옮겨 복원하였다고 한다. 몸돌 앞면 윗부분에 ‘해련(海蓮)’, ‘지탑(之塔)’이라고 새긴 2행 4자의 글자가 있어서, 승탑의 주인공이 해련임을 알 수 있다. 이 때문에 이 승탑을 ‘해련탑’이라고 부른다.
승탑은 단면이 8각인 바닥돌 위에 8각의 받침돌을 놓고, 그 위에 8각 몸돌과 지붕돌을 차례로 올린 전형적인 8각원당형(圓堂形) 부도이다. 받침돌은 아래받침돌, 가운데받침돌, 윗받침돌로 구성되었다. 아래받침돌은 크게 세 부분으로 이루어졌는데, 맨 아래에는 각 면에 안상(眼象)을 새긴 돌을 놓았고, 그 위의 돌에는 덮개돌 모양을 새겼으며, 맨 위의 돌에는 꽃잎이 아래로 향한 복련(覆蓮)의 연꽃 무늬 8개와 귀꽃이 각 모서리마다 조각되어 있다. 아래부분에 두툼한 굄을 새긴 가운데받침돌에는 각 면에 큼직한 안상이 1구씩 새겨져 있다. 윗받침돌은 아래받침돌의 윗부분과 반대로 꽃잎이 위로 솟은 앙련(仰蓮)의 연꽃 무늬를 돋을새김한 모습인데, 연꽃잎 안에는 또 다른 꽃 무늬가 조각되어 있다.
몸돌의 각 모서리에는 기둥이 있고, 앞면과 뒷면에는 문비(門扉)가 조각되었다. 특히 앞면의 문비에는 귀신의 얼굴과 함께 문고리가 장식되었고, 뒷면의 문비 안에는 자물쇠 밑의 문고리만 새겨져 있다. 지붕돌은 널찍한 편인데, 밑면에 낮은 3단의 받침이 있고, 평박(平薄)한 낙수면에는 내림마루인 우동(隅棟)이 각 모서리마다 두툼하게 표현되었다. 전각(轉角)은 대체로 수평이며, 여덟 모서리에는 귀꽃이 장식되었지만 넓고 큰 지붕돌에 비해서 작아 보인다. 상륜부의 석재는 하나도 남아 있지 않다.
이 승탑은 통일신라시대 이래 전형적인 승탑 양식으로 전승된 8각원당형을 충실히 따르고 있다. 안상과 연꽃 무늬가 잘 표현되었으며, 문비를 비롯하여 귀신의 얼굴, 문고리 등의 장식도 눈에 띈다. 각 세부의 조각과 조성 양식 등으로 보아, 고려 전기에 건립된 것으로 추정된다.(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보안교(펌)
당에서 건너온 요동태수 유마운의 딸 보안이 치마폭에 싸 놓았다는 전설 속의 돌다리이다.
다리 위에는 두개의 명문이 있는데, 계곡 아래쪽에 '維摩洞天普安橋'가 계곡의 북쪽에 '觀世音普薩 梁蓮浩'라고 쓰여 있다. 글씨의 크기는 17~24cm이다. 관세음보살의 옆에는 한글로 '관세음보살'이라고 쓰여 있고 그 밑에 작은 글씨로 '白雲居士書'라고 쓰여 있다.


<유마사>
유마사는 시원 계곡과 울창한 수림에 둘러싸여 있다. 유마사는 당나라에서 건너온 유마운과 그의 딸 보안이 창건했다. 유마사의 단풍과 해련부도 주변의 풍광은 특히 가을에 아름답다. 해련부도는 고려 초기 부도의 전형적인 모습을 담고 있다. 중석 받침의 복련은 각각의 모서리마다 귀꽃을 조각하여 장식하고 있다.


다 자란 자란이 산객을 반기고 있다
<자란>
바위의 암벽에 자생하는 식물로 다년초이다. 구경은 납작한 구형으로 흰색이고 잎은 줄기의 아래에 5~6장이 호생한다. 잎은 긴 타원형으로 양 끝은 뾰족하고 뒤로 구부러져 있다. 잎에는 세로 평행선의 종맥이 있고 길이는 20~30㎝로 꽃대는 한 대가 새싹의 중앙부에서 50㎝ 정도 길게 나와 그 끝에 총상화서로 3~7개 꽃이 핀다. 꽃은 자홍색이고 꽃받침과 꽃잎은 좁은 타원형으로 양 끝이 뾰족하다. 순판은 도란상 타원형으로 연자보라색이다. 개화기는 5~6월이며 절화로 이용된다. Striata는 '세로 줄이 있다'는 뜻이며, 강건한 종으로 재배가 용이하다. 원산지는 아시아 동부의 온대와 열대 지방으로 9종이 알려지고 있다.
홍란이라고도 불려지는 것처럼 홍자색의 꽃과 선명한 줄 모양이 있는 잎이 아름답다. 산야에 자생도 하지만 재배된 것이 절화로 나온다. 소품의 꽃꽂이 즉 다화(茶花)나 투입화(投入花)든 어느 것도 일종으로 꽂는 것도 잎과 꽃이 너무나도 아름다운 조화를 보여주기 때문이다. 수반 등을 이용해 꽂으려면 가지류의 밑부분에 곁들여 전체를 모으는 역할을 하는 것이 어울린다.
[네이버 지식백과] 자란 (한국화재식물도감, 하순혜, 탕카)

6.25때 백아산과 함께 빨치산의 근거지로 불타 전소되어 폐허가 된것을 최근에 중창함. 대웅전 재건을 위해 준비중으로 대웅전이 없네요

오디도 보인다. 옛추억을 떠올리며 한입 먹어본다. 옛맛 그대로다

개오동나무꽃

개오동

까치수영(염)도 본격적인 개화를 시작한다. 여름내내 꽃을 피우며 벌 나비를 괴롭힐 것이다

으아리 씨방

집게봉 갈림길

누군가가 돌담장을 쌓았다

이제 막태어난 돌사람

뱀이 많다는 뱀골(철철바위방면) 삼거리

곳곳에 이렇게 진지같은 모습들이 보인다. 슬픈 현대사의 한대목이다. 누구를 위한 무엇을 위한 싸움이었는지...
모후산 유마사는 한국전쟁 당시 인민공화국 남로당 전남도당 위원회가 있었던 분단의 아픈 현실을 간직한 현대사 비운의 현장이다. 모후산 남릉의 집게봉 9부 능선에는 지금도 빨치산이 파놓은 참호가 남아 있으며, 올해부터 군은 이를 복원할 계획이다. 참고로 이보다 북쪽에 위치한 백아산은 조밀한 암벽이 천연 요새 역할을 해 빨치산 남부군 전남도 사령부가 있었다. 두 산 모두 한국전쟁 당시에는 피비린내나는 살육전이 잇따랐다. 결국 화순땅은 무등산과 지리산으로 이어지는 인민군과 빨치산의 중심지였던 셈이다.

뒤돌아보는 거북바위. 눈만 그리면 승천할 기세다

원두막 삼거리

기상청 강우레이다관측소 모노레일. 용문재에서부터 혼산의 산객에게 든든한 동행이 되어준다
아직도 내게 슬품이 ...

산행 도중에 만나는 쉼터 / 날 기다린것 같다

정상으로 치닫는 모노레일


무덤가엔 유난히 꿀풀(하고초)이 많은것 같다. 잡목이 없는 이런자리가 꿀풀이 살아가기에 안성마춤이다


죄측이 북쪽능선
모후산은 고려(개성)인삼의 시배지로 유명하다. 정확한 위치는 모후산 정상에서 산행팀 경로와 반대방향인 북릉 쪽에 위치해 있다. 이는 사도세자의 장인인 홍봉한이 쓴 '증보문헌비고'와 개성부 유수를 지낸 김이재의 '중경지(中京志)'에 표기돼 있다. 3년 전 이곳에선 120년 된 2억5000만 원 상당의 천종산삼 8뿌리가 발견됐다고 한다.

모후산 산정부가 운무를 덮어쓰고서는 힐끔힐끔 낯선이의 방문을 경계하는듯 하다


이제 정상부가 보인다

커다란 정상표지석을 대신한다라는 표현도 좋은데 그 보다는 그냥 산행중 등대역할을 하는듯 하다

참조팝나무꽃이 오늘의 산주 되시겠다 / 그래서 살짝 알아보고 갑니다
<산조팝나무>
중부 이북의 산 속 바위지대에 자라는 낙엽 떨기나무다. 세계적으로는 중국, 일본, 러시아 동북부 등지에 분포한다. 줄기는 높이 1-2cm, 연한 갈색 또는 붉은 갈색을 띤다. 잎은 어긋나며, 난형 또는 난상 타원형, 가장자리에 고르지 않은 거친 톱니가 있다. 잎 앞면은 녹색이며, 뒷면은 연한 녹색, 양면에 털이 없다. 꽃은 5-6월에 가지 끝의 겹산방꽃차례에 피며, 붉은빛이 도는 흰색이다. 꽃받침통은 종 모양이며, 안쪽에 털이 있다. 꽃잎은 난형이다. 수술은 많으며, 꽃잎보다 길다. 열매는 골돌이며, 털이 거의 없다. 관상용으로 심기도 한다.1)
[네이버 지식백과] 참조팝나무 (국립생물자원관 생물다양성정보 : 식물)


강우레이다관측소.. 아침에 살짝 내리던 빗방울도 여기에 관측이 되었겠지
<모후산 강우레이더관측소>
국토교통부 산하 한강홍수총제소가 추진했던 모후산 강우레이더기지 건설공사는 2009년 230어원을 들여 모후산 정상(해발 918m) 부근에 레이더기지 1동(연면적 2,910m2)을 완공, 가동중이며, 도마치재 부근에 관리시설 1동(연면적 455m2)도 운영중에 있다.
모노레일 3.2km도 설치되어 있으며, 레이더 전파를 이용하여 반경 100km 이내의 강우분포를 관측하고, 관측데이터를 실시간 홍수통제소로 전송하고 돌발홍수, 도시홍수 등의 방재업무에 활용하기 위한 관측 통신시설이다


나복산에서 모후산으로


땅바닥 셀카는 다리를 길어 보이게 한다

이제 안녕을 고하고 떠나야 한다. 안녕

참조팝나무
낙엽(落葉) 활엽(闊葉) 관목(灌木), 높이 1~2m이다. 줄기는 곧추 자란다. 가지는 비교적 거칠며 세로간 모서리가 뚜렷하고 털은 없으며 윤기가 난다. 나무껍질은 연한 황갈색 또는 자갈색이다. 동아(冬芽)는 난형(卵形)인데 갈색의 인엽(鱗葉)이 덮여 있다. 잎은 단엽(單葉)인데 호생(互生)하며 짧은 엽병(葉柄, 길이 3~8mm)이 있다. 엽신(葉身)은 난형 또는 난상(卵狀)의 타원형(楕圓形, 길이 4~8cm, 너비 2.5~5.4cm)인데 끝부분은 빠르게 뾰족하고 밑부분은 쐐기형 또는 좀 둥글고 변두리는 고르지 못한 거친 거치상(鋸齒狀)이다. 잎 앞면은 녹색이고 뒷면은 담녹색인데 털은 없다.
[네이버 지식백과] 참조팝나무 (조선향토대백과, 2008., 평화문제연구소)


모후산 하면 '동복 삼복(三福)'을 빼놓을 수 없다. 고려 공민왕 때부터 조선 후기까지 궁중에 진상돼 당시 동복현감의 골칫거리였다고 전해온다. 복청(福淸·모후산 토종꿀) 복삼(福蔘·천종산삼) 복천어(福川魚·동복천의 민물고기)가 바로 그것이라 한다.

지나온 모후산

철철바위(펌) 계곡을 따라 커다란 바위가 철철 흘러내리듯이 있어 철철바위라고 / 지금은 찔찔내려 찔찔바위로 개명추진 놀란


중봉에서

가뭄에 주암호의 용수도 많이 빠져있다. 점점 물부족국가의 모습이...

집게봉이다

능선부의 한 묘지

애기주먹바위(개인 작명)

하산길


숲길은 평온함과 함께하는 길이었다. 생태숲 조성지가 있울만큼

모후산 강우레이다타워가 저 멀리

근사한 대나무 숲을 지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