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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2. 인천 문학산 / 2024.4.13. / 산타모니카 산행이야기

200대명산 산행기/172. 인천 문학산

by 산위에서 부는 바람 2024. 12. 15. 08: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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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대명산 172차 인천 문학산

높진 않지만 200대명산 자격이 충분

오늘의 야생화 제비꽃 수수꽃다리 애기똥풀 산괴불주머니 꽃마리 장딸기꽃

산행기록

○ 일시 : 2024.4.13. 16:09 ~ 17:24

○ 장소 : 인천 문학산

○ 참석 : 1인

○ 높이 : 문학산 217m / 누적고도 202m

○ 거리 : 3.7km

○ 시간 : 1.2시간 / 이동시간 4시간

○ 배지 : 문학산

○ 코스 : 인천장미공원 - 맹꽁이서식지 - 좌측둘레길 - 중간능선오름길 - 문학산(정상) - 데크길 -

              문학산성 - 인천장미공원

○ 특이사항 : 암릉 조망산행

 

<문학산(文鶴山)>

인천광역시의 남구 문학동 · 관교동 · 학익동과 연수구 연수동 · 청학동에 걸쳐 위치한 산이다(고도:217m). 『세종실록지리지』와 『신증동국여지승람』에는 남산(南山)이라 기록되어 있다.

『대동지지』와 『대동여지도』, 『조선지지자료』에 문학산이라는 지명이 보이며 산 정상부에는 봉수가 설치되어 있던 것으로 묘사되어 있다. 『1872년지방지도』 인천부에 문학산성봉수(文鶴山城烽燧)가 묘사되어 있다. 「인천부읍지」에도 남산이라고 표기되어 있으며 "인천부에서 2리에 있는데 일명 문학산이라고도 불린다."고 되어 있다.

남산이라는 지명은 '인천부 청사의 남쪽에 있는 산'이라는 뜻이고, 문학산이라는 이름은 '학(鶴)이 서식하는 산'이라는 의미에서 나왔다는 유래를 갖고 있다. 정상부에서 서쪽 봉우리를 연경산, 동쪽 봉우리를 선유봉이라고 부른다.

[네이버 지식백과] 문학산 [文鶴山, Munhaksan] (한국지명유래집 중부편 지명, 2008. 12.)

문학산 정상에서

문학산 지도

주차장은 이미 만차

장미근린공원

잘 가꿔진 공원

꽃마리도 귀엽게

 

가장 맑은 깨끗한 모습의 조팝나무

박태기나무도 열정적인 꽃을 피우고

<박태기나무>

밥알 모양과 비슷한 꽃이 피기 때문에 박태기라 하는데, 일부 지방에서는 밥티나무라고도 한다. 북한에서는 꽃봉오리가 구슬 같다 하여 구슬꽃나무라 하고 그리스말로는 Cercis, 즉 칼처럼 생긴 꼬투리가 달린다 해서 칼집나무라고 부른다. 또한 예수를 배반한 유다가 이 나무에 목매어 죽은 나무라고 하여 유다 나무라고도 한다.

박태기나무는 아주 옛날 중국에서 들어온 낙엽활엽관목으로 키가 3~4m까지 자란다. 추위에도 잘 견디고 햇빛을 좋아하며, 특히 콩과식물이기 때문에 땅이 비옥하지 않은 곳에서도 뿌리로부터 질소를 고정하여 잘 살아갈 수 있다. 박태기나무가 절 주위에 많이 심겨져 있는 것은 옛날에 스님들이 중국을 왕래할 때 들여온 것으로 추정되나 지금은 시골 어느 곳에서도 흔하게 눈에 띄는 꽃나무다. 진홍빛 작은 꽃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어서 매우 화려하고 모양이 독특하여 정원이나 공원에 다양한 꽃 색을 갖추는데 훌륭한 소재가 된다. 또한 잎 모양도 둥글고 윤기가 나서 관상가치가 있고, 꽃이 지고 나면 10cm쯤 되는 꼬투리 모양의 열매 또한 보기가 좋다.

박태기나무 줄기나 뿌리껍질은 한약재로 쓰인다. 삶은 물을 먹으면 이뇨작용을 잘해 주어 소변이 안 나오는 사람한테 탁월한 효험이 있고, 중풍 · 고혈압 또는 대하증 등 부인병에도 효과가 있다. 목재 또한 소방목이라고 해서 약제로 쓰인다. 박태기나무 꽃에는 약간의 독성이 있어서 꽃잎을 따서 씹어보면 아린 맛이 나며 많이 먹어서는 안 된다. 번식은 가을에 콩꼬투리 모양의 열매 속에 크기가 7~8mm 되는 황록색 종자를 채취해서 그대로 파종하거나 젖은 모래와 섞어서 물이 잘 빠지는 곳에 노천 매장했다 봄에 파종하면 되며, 포기나누기로 번식할 수도 있다. 특히 박태기나무는 실뿌리가 잘 나오지 않기 때문에 옮겨 심을 때 주의해야 하고, 가을에 낙엽이진 뒤에 전정을 해주면 이듬해 좋은 꽃을 볼 수 있다.

[네이버 지식백과] 박태기나무 (우리 생활 속의 나무, 2008. 3. 25.)

맹꽁이 서식지라 합니다

<맹꽁이>

학명은 kaloula borealis BARBOUR이다. 몸길이는 45㎜ 정도이며 몸통은 현저하게 팽대되어 있다. 머리의 너비는 길이보다 약간 길고, 주둥이는 짧고 작으며 끝이 약간 둔하면서 뾰족하게 되어 있고 아랫입술보다 약간 앞쪽으로 돌출되어 있다.

울음주머니는 현저히 나타나는데 아래턱의 앞쪽 끝 가까이에 한개가 있다. 앞다리의 길이는 몸길이의 반 정도이고 발가락 끝이 팽대되어 있으며 물갈퀴가 없다. 뒷다리의 길이는 앞다리의 약 2배이고 넓적다리는 극히 짧으며, 물갈퀴는 발달되어 있지 않고 깊이 패어 있다.

몸통 배면의 바탕색은 황색이며 옆쪽에는 연한 흑색의 대리석과 같은 모양의 얼룩무늬가 있다. 유생(幼生)은 머리와 몸통이 대체로 알모양이고 길이는 너비보다 약간 크며 앞쪽은 현저하게 너비가 넓다. 주둥이 끝은 뾰족한 편이며 끝이 잘려 있다. 눈은 등쪽 옆면에 있으며, 두개의 콧구멍은 서로 접하여 있다.

맹꽁이는 도시의 변두리 논이나 저산지대의 평지, 또는 민가 주변의 논과 길가의 논둑에서 낮에는 굴속에 숨어 있는데, 여름철 첫장마가 와서 논과 길가의 웅덩이에 물이 고이면 물속으로 들어간다.

수컷이 먼저 들어가 요란하게 울면 암컷이 이 소리를 듣고 물속으로 들어가 짝을 지어 산란이 시작된다. 산란을 마치면 물속에서 나와 밭둑이나 산기슭으로 이동하여 뒷다리로 굴을 파서 낮에는 그 속에서 은신하고 있다가 밤에 먹이를 찾아 나온다.

우리 나라에는 서부지방과 중부지방을 비롯하여 제주도까지 분포하나 강원도 영동지방에는 없다. 지금은 도시의 팽창 등으로 서식처가 점점 없어져가고, 수질오염으로 개체군이 급격히 감소되고 있다.

[네이버 지식백과] 맹꽁이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잘 정비된 둘레길

때론 자연상태의 오름길

인천시내 소래포구방면

 

군부대와 협의 2015년에 정상이 개방되었다고

글씨체가 독특한 문학산

인천의 심은(沈隱) 전정우 서예가는 5억원이 넘는 사재를 들여 미술관을 만들었다. 서체는 다양하지만 작품을 쓴 이는 한사람이다. 그래서 미술관 이름도 자신의 호를 따 '심은 천자문 서예관'으로 붙였다. 정상 표지석 글씨도 심은의 작품이다

동쪽방면 조망

래터링

돌을 품는 나무, 돌을 먹는 나무라고

데크 둘레길

문학산 둘레길

<문학산성>

1986년 12월 18일 인천광역시 기념물로 지정되었다. 인천광역시의 진산(鎭山)인 문학산(높이 213m, 학산 또는 남산이라고도 함) 정상부에 축조되었으며 미추홀 고성(彌鄒忽古城), 남산성(南山城) 등으로도 불린다.

《동사강목(東史綱目)》, 《여지도서(輿地圖書)》 등에 따르면 이곳은 고구려 동명왕의 둘째아들 비류(沸流)가 조성한 도읍지로서 석성터가 있다고 기록되어 있다. 또 《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에도 백제 시조 온조왕의 형인 비류가 이곳에 정착하여 미추홀(彌鄒忽)이라고 명명한 기록이 있는데, 이것이 인천광역시의 최초의 명칭이라 할 수 있다.

성의 축조형식은 테뫼식으로 내·외성으로 되어 있으며, 성에는 봉수대가 있었다. 성의 둘레는 총 577m로서 현존하는 부분은 339m이고, 육안으로 확인 가능한 부분은 220m이다. 전구간이 거친 마름돌로 이루어졌다. 성석은 층마다 수평을 이루고 뒤로 올라가면서 조금씩 퇴물림을 하였다.

[네이버 지식백과] 문학산성 [文鶴山城] (두산백과 두피디아, 두산백과)

<소래포구>

일제시대 염전이 있었고 거기서 나오는 소금을 실어나르기 위해 수원과 인천을 오가는 협궤열차가 지나던 곳이다. 1937년에 개통되어 1995년 12월 31일 폐선될 때까지 수원과 인천을 오가는 서민들의 애환과 연인들의 추억을 담았던 수인선 협궤열차는 사라졌지만 소래포구의 철길은 옛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으며 바닷길을 건너는 다리로 이용되고 있다. 다리를 건너면 어시장으로 연결되는데 새우와 젓갈, 꽃게로 유명하며 노천횟집 100여 곳이 성업 중이다. 횟감을 떠서 포구로 다시 나가 선착장에 돗자리를 깔고 앉아 먹을 수도 있다. 또한 멸치젓, 꼴뚜기젓, 밴댕이젓, 게젓 등 젓갈 백화점이라 불릴 정도로 각종 젓갈이 풍성하다.

1960년대 실향민들이 어선 10여 척으로 근해에 나가 새우잡이를 하면서 만들어진 포구는 썰물 때는 갯벌 위에 올라 있는 어선들이 독특한 풍경을 만들어 내며 이 어선들은 밀물 때가 되면 다시 바다로 나가 그날 잡은 싱싱한 생선들을 어시장으로 실어 나른다. 매월 음력 보름 3일 전부터 3일 후, 그믐 3일 전부터 3일 후에 찾으면 좀 더 풍성한 어시장 나들이가 된다. 김장철이면 젓갈을 구입하려는 사람들로 걸음 옮기기도 힘들 정도가 되며, 해질녘 풍경이 아름답기로도 유명하다. 과거 염전이 있던 자리에는 해양생태공원이 조성되어 있는데 염전 창고를 개조해 만든 생태전시관과 염전학습장, 갯벌체험장 등이 즐거운 체험거리를 제공하고 있다. 최근 바다 건너의 시흥과 다리로 연결되어 한층 교통이 편해져 휴일 전날이면 더욱 불야성을 이룬다.

[네이버 지식백과] 소래포구 (죽기 전에 꼭 가봐야 할 국내 여행 1001, 2010. 1. 15.)

<삼호현>

삼국시대, 중국으로 파견 가는 백제 사신들은 부평별 고개와 사모지 고개를 거쳐 지금의 옥련동 한나루에서 배를 타고 떠났다. 중국으로 가게 된 사신은 이별 고개[성현(星峴)]’에서 따라온 가족들과 마지막으로 작별을 하고 홀로 길을 재촉하여 사모지 고개에 이른다. 이때 뒤를 돌아 아직도 이별 고개를 떠나지 못한 가족들을 향해 “잘 있으라.”라고 크게 세 번 외치고 고개를 넘었다고 하여 삼호현(三呼峴)이라 했다고 한다. 한나루[능허대]로 가는 주요 교통로였던 고개이며, 후에 사모지 고개로 이름이 바뀌었다고 한다.

[네이버 지식백과] 사모지 고개 (한국향토문화전자대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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