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세 컨텐츠

본문 제목

145. 논산 노성산. 2022.9.18. / 산타모니카 산행이야기(51)

200대명산 산행기/145. 논산 노성산

by 산위에서 부는 바람 2025. 3. 12. 08:51

본문

728x90
반응형

200대명산 145차 논산 노성산

오늘도 초여름날씨
오늘의 야생화 벌개미취 참취 쥐꼬리망초

 

산행기록

○ 일시 : 2022.9.18. 12:07 ~ 14:14

○ 장소 : 논산 노성산

○ 참석 : 1인

○ 높이 : 노성산 348m / 누적고도 312m

○ 거리 : 5.0km

○ 시간 : 2.1시간(휴식시간 -시간) / 이동시간 2시간

○ 배지 : 노성산, 봉우재산, 옥리산

○ 코스 : 명재고택 - 노성산애향공원 - 옥리봉 - 노성산성 - 노성산 - 금강대도 - 임도길 - 체력단련장 - 애향공원

○ 특이사항 : 초여름 날씨의 산행

 

노성산(魯城山)

노성산(魯城山)은 높이 348.1m로 논산시(論山市)의 북쪽, 노성면(魯城面) 가곡리(佳谷里)와 송당리(松堂里), 상월면(上月面) 신충리(新忠里), 월오리(月午里)에 걸쳐있는 산이다. 편마암과 화강암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편마암이 분포하는 곳에는 소나무와 활엽수 등 다양한 수종이 자라고 있다. 화강암으로 구성된 곳은 상대적으로 평탄한 곳이 많으며 논산평야로 이어진다.

동쪽으로 소규모 골짜기가 발달하였으며 노성천과 합류하는 석성천의 지류가 흐른다. 정상 부분에는 백제시대에 축조된 테뫼식 석축산성인 노성산성(사적 제393호)이 있다. 산성은 대부분 붕괴되었지만 일부 남은 구역에서 축성법을 확인할 수 있다. * 출처:두산백과 두피디아

 

 

논산 노성면의 노성산에 오릅니다. 마을 주민들은 지명에 표기된 한자를 훈차 표기로 풀이하여 노송(老松)이 있어 산 이름을 '노송산'이라 부른다거나, 산 정상에 고려 시대 최영 장군이 쌓았다고 전하는 좌월대가 있다 하여 '좌월산'이라 부른다고 전한다.

 

노성산 지도

 

노성산 등산안내도 입니다.

 

들머리는 노성산 애향공원에서 산행을 시작합니다. 넓은주차장, 잔디밭, 정자가 있고, 교동흔들다리, 황토지압길도 조성되어 있습니다. 시만공원으로 가족단위로 들리면 좋을듯

 

쥐꼬리망초는 후미진 곳에서 흔하게 관찰되는 한해살이풀로 바싹 마른 땅에서는 살지 않는다. 약 두 달 동안 꽃이 피고, 꽃차례 하나에 한두 송이씩 순서대로 핀다. 두 송이는 약속이라도 한 듯이 일사불란하게 한쪽 방향으로 피며, 앙증맞다.
이름은 한꽃차례 모양이 쥐꼬리를 닮았고, 오래전부터 알려져 왔던 망초란 이름이 더해져 만들어졌다고 한다.

 

명재고택.  숙종 때 소론의 지도자였던 윤증(尹拯)의 고택이 있다. 옥녀탄금형(玉女彈琴形)의 명당으로, 백제시대 노성산성이 있는 노성산을 배산으로 노성향교와 나란히 배치되어 있다. 집 앞으로 직접 보이는 시선을 막기 위한 등선과 커다란 아름드리 느티나무가 서 있다. 그 옆으로 윤증 선생의 어머니 공주이씨 정려각이 팔작지붕으로 꾸며져 있다. 

 

인위적인 연못은 유지하기가 어려운데 잘 만들어진것 같다. 

 

명재고택 설명판

 

정려문이 있는데 정려의 주인공은 문경공 미촌 윤선거의 부인이며, 명재 윤증 선생의 어머니다. 윤선거는 김집(金集)의 문인으로, 1636년 청국의 사신이 왔을 때 유생들을 거느리고 청나라 사신 용골대를 죽이고 명나라에 대한 의(義)를 지키고자 상소를 올렸다. 그해 겨울, 청 태종이 병자호란을 일으키자 윤선거 선생은 강화도로 피난을 떠났다. 강화도마저 함락되자 어머니는 청군에게 죽느니 순절을 택하였다. 이를 계기로 윤증 선생은 조정의 관직에 임명되어도 조정에 나가 벼슬을 한다는 것은 어머니의 순절에 대한 보답이 아니라며 사양하였다. 윤증의 덕행에 많은 선비들은 그를 ‘백의정승’이라 대우했다.

 

명재고택 사색의 길이다. 오늘도 책을 한권 읽는 것이다.( 遊山如讀書 유산여독서 / 퇴계 이황)

 

노성산성 애향공원 주차장

 

그래도 꽤 오신듯

 

참취가 나좀 봐달라고 떼를쓰고 있다. 알았어요...

 

완만한 능선 오름길

 

지난 비에 쇄굴된 흔적도 보이고

 

능선 갈림길

 

옥리봉에서 한컷

 

계단으로 잘 정비해 놓았다.

 

잘 정비된 산택로 수준

 

오름길이 자연스럽게

 

능선 갈림길

 

벌개미취 형제들이 오손도손 피어있다

<벌개미취>

별개미취라고도 한다. 습지에서 자란다. 높이 50∼60cm이다. 옆으로 벋는 뿌리줄기에서 원줄기가 곧게 자라고, 홈과 줄이 있다. 뿌리에 달린 잎은 꽃이 필 때 진다. 줄기에 달린 잎은 어긋나고 바소꼴이며 길이 12∼19cm, 너비 1.5∼3cm로 딱딱하고 양 끝이 뾰족하다. 가장자리에 잔 톱니가 있고 위로 올라갈수록 작아져서 줄 모양이 된다.

꽃은 6∼10월에 피는데, 두화(頭花)는 연한 자줏빛이며 지름 4∼5cm로서 줄기와 가지 끝에 1송이씩 달린다. 총포는 공을 반으로 잘라놓은 모양이며 지름 약 8mm, 길이 약 13mm이다. 포조각은 긴 타원형이며 가장자리에 털이 나고 4줄로 늘어선다.

열매는 수과(瘦果)로서 바소꼴이고 11월에 익는다. 길이 4mm, 지름 1.3mm 정도이고 털과 관모가 없다. 어린순은 나물로 먹는다. 한국 특산종으로 전라남도·경상남도·경상북도·충청북도·경기도 등지에 분포한다.

[네이버 지식백과] 벌개미취 (두산백과 두피디아, 두산백과)

 

또다른 갈림길

 

정상부를 향해 올라갑니다

 

산성의 흔적이

 

노성산성 모습. 테뫼식(마치 머리띠를 두른 듯 산봉우리를 동그랗게 둘러싼 모양의 산성) 산성으로 둘레는 900m정도라고 한다

 

정상부의 모습

 

 

노성산성 남문. 백제의 산성은 주로 흙을 다져 고사떡 모양으로 쌓는 판축법을 사용했는데 특이하게도 노성산성을 돌로 쌓았다고 한다.(펌)

<노성산성>

백제시대의 산성으로 노성산 산정에 있다. 공주·논산·연산으로 갈라지는 지점에 위치하며, 동북방향으로는 양화산성과 대하고 있다. 둘레 약 900m, 높이는 서쪽이 4.2m, 남쪽이 6.8m이며 서쪽문의 흔적이 뚜렷이 남아 있는데 너비는 6m이다. 여기에 사용된 석재는 크기가 일정하지 않지만 20cm×60cm 정도로서 네모지게 다듬고 자연의 지세를 교묘하게 이용하여 둘레 약 1km를 석축(石築)으로 쌓은 테뫼형산성이다.

축성술은 근방의 산성 중에서 보기 드물게 완벽한 형태이다. 동면·북면·서면을 할석(割石)을 다듬어 네모지게 쌓고, 정상부에는 경사면을 삭토하여 만든 토루가 있으며, 산꼭대기에는 장대지로 추정되는 곳과 장대지 동쪽으로 조금 내려온 곳에 봉수대로 추정되는 부분이 25m 정도로 석축되어 있다.

연산면 표정리의 황산성과 일직선상에 위치하여 백제와 신라가 대치했던 최후의 방어선으로 삼국시대부터 조선시대에 이르기까지 계속 사용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네이버 지식백과] 논산 노성산성 [Noseongsanseong Fortress, Nonsan, 論山 魯城山城] (두산백과 두피디아, 두산백과)

 

산성정상부에 제법 넓다란 공간이 나온다.

 

건너엔 계룡산능선이 한눈에 들어온다.

 

정상부 능선길

  

계단을 오르면

 

산성의 정상 정자가 세워져 있다. 산성에는 우물이 4개나 있었다고 한다.

 

정상부 모습

 

정상에서 한컷

 

여기도 일제의 잔재가...

 

건물들이 나타납니다

 

 

금강대도 건물입니다

 

노성산성입구 바위들이 수문장처럼 세워져 있다. 예사롭지 않은 모습이다.

 

삼신암 / 뭔가 글씨가 씌여 있습니다 

 

노성산성비

 

금강대도 노성본원 유불선 삼교를 통합해서 1874년 창도된 종교

<금강대도>

금강대도는 1874년에 창도 되었다, 도덕적으로 타락한 인류를 구원해 줄 구세주로서 건곤부모의 지상화현을 믿는 종교다. 사상은 의성이며 천지인, 유불선, 심성신의 삼합 원리를 추구함으로써 도덕적으로 화합하는 이상 낙원을 건설하고자 한다. 일제강점기에는 비탄에 빠진 사람들에게 민족정신 함양과 독립의 희망을 주창하다 일제에 혹독한 탄압을 받는 등 민족종교의 역할을 하였다. 오랜 역사가 있는 한국의 민족종교로서, 유·불·선의 진리를 하나로 합하여 인류의 미래인 후천시대 오만 년 동안 도덕 문명으로 중생을 제도하여 대동세계를 이루기 위하여 창도한 것이다. 금강대도의 시설물들은 일제강점기에 대부분 강제 철거되어 해방 후에 세워졌는데, 금병로를 따라가다 보면 양쪽에 연꽃밭이 푸르게 펼쳐져 지나가는 사람들의 발걸음을 멈추게 하고, 입구에 개도 백 년 탑을 중심으로 공원이 있어 쉼터의 역할을 하고 있다. 단청이 그려진 개화 문을 지나면 오만수련광장, 금종루, 성경대, 삼청보광전, 대도덕성사건곤부모님이 모셔져 있는 삼종대성전을 만날 수 있다.

[네이버 지식백과] 금강대도 (대한민국 구석구석, 한국관광공사)

 

금강대도 노성본원

 

안내문

 

여뀌도 한창

<여뀌>

조선시대에는 ‘요화(蓼花)’라고 하였는데 『동의보감』에서는 ‘뇨화’라 하였다. 이명으로는 수료(水蓼)·택료(澤蓼)·천료(川蓼)·수홍화(水紅花)·홍료자초(紅蓼子草) 등이 있다. 학명은 Persicaria hydropiper (L.) Delarbre이다.

여뀌는 습지 또는 시냇가에서 자라며, 높이 40∼80㎝로서 털이 없고 가지가 많이 갈라진다. 잎은 피침형으로 어긋나는데 양끝이 좁으며 가장자리가 밋밋하고, 길이 3∼12㎝, 너비 1∼3㎝로서 표면에 털이 없다.

꽃은 6∼9월에 피고 수상화서(穗狀花序)는 길이 5∼10㎝로서 밑으로 처지며 소포(小苞)는 가장자리에 짧은 털이 있다. 열매는 수과(瘦果)로 흑색이며 편란형(扁卵形)이고 작은 점이 있다.

여뀌는 지혈작용이 있어서 약재로 이용된다. 주로 자궁출혈·치질출혈 및 그 밖의 내출혈에 쓰이는데 그 작용은 맥각균의 효능과 유사하다.

잎과 줄기에는 탄닌이 많이 함유되어 있으며 항균작용이 현저하다. 또, 휘발성의 정유성분이 혈관확장작용으로 혈압을 내려주고 소장과 자궁의 긴장도를 강하시킨다. 민간에서는 이것을 짓찧어 물고기를 잡는 데 사용한다.

[네이버 지식백과] 여뀌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길을따라 하산

 

 임도가 시원시원

 

주요지점에 포토존이

 

군데군데 쉼터가

 

주민들이 산책하기 좋게 만들어졌다

 

가의 다 내려온듯

 

728x90
반응형